김주환 교수 (강동대, 사회복지행정과)

 
 

올해 들어 개헌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하다. 대통령은 6월 지방선거와 개헌에 관한 국민투표를 병행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국회에서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정부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조만간 정부의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개헌논의가 왠지 본질을 빗겨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속된 말로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현재의 헌법은 1987년 6월 직선제 대통령선출에 대한 시민항쟁의 열망으로 탄생하였다. 기존 7년 단임의 대통령임기를 5년 단임으로 2년을 축소하는 것과 국정감사를 부활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입법·사법 등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개헌이 이루어졌다. 헌법재판소도 그 당시 개헌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도입되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 등에 엇갈리면서 정치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일련의 문제점이 부각되었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아직도 과도하다는 비판이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 이후 불행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현 헌법의 초대 직선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마련한 죄목으로 수감되는 치욕을 맞보았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영식(令息)이라 불리던 자식들이 뇌물죄로 구속되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에 의해 폐족(廢族)이라 불리며 퇴임하였고, 영부인(令夫人)이 수백만 달러를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과 함께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본인은 아니지만 그 친형이 역시 구속되는 수모를 맛보야 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오랜 측근이었던 최순실과 공모하여 국정을 농단하였다는 죄목과 함께 탄핵과 구속이라는 전임자들 불행의 역사를 예외 없이 밟고 있다.

이러한 전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로를 보며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 헌법 하에 대통령이 가진 제도적 문제점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 개헌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아마 최초로 현 헌법을 개정하고자 하였던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재임당시 소위 ‘원 포인트 개헌’으로 불리며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대통령제’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당시 야당에 의해 일언지하에 거절되었다. 이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개헌에 대한 공약이 있었으나 말 그대로 공약(空約)으로 그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달리임기 초반임에 불구하고 작년 가을 지방분권을 약속하며 개헌에 대한 논의를 불 집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가을 이후부터 각 지역별로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금년 들어서는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방분권개헌을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각 읍면동 사무소에 서명부가 비치되어 찾아오는 주민들로 하여금 서명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필자 또한 지역의 분권개헌 토론회에서 이의 당의성에 대한 동의와 함께 우려되는 점을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개헌과정을 지켜보면서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전술한 것처럼 이제까지 개헌의 필요성은 권력구조에 대한 합리적 개편이 핵심을 이루어왔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임기를 중임제로 바꿀 것인지? 아니면 내각제로 근본적으로 바꿀 것인지? 등등 권력구조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최근 개헌과 관련하여 회자된 것은 지방분권,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촛불정신(?) 등등 주변부 논의만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들 문제가 헌법에 반영여부 등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대부분 충분한 논의만 진행된다면 합리적으로 정리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일례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현재 그 진상조사가 다시 이루어지려 하는 등 아직 정리가 덜 된 사안이다. 또한 촛불정신의 문제는 그동안의 여러 재판과정 등을 통해 재작년 있었던 언론의 보도들이 대부분 가짜 혹은 과장된 것으로 판명되면서 부끄러운 제2의 광우병난동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외에도 민주주의 성격 문제는 1980년대 후반 소련의 붕괴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확인된 상황에서 다시 논쟁을 벌인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사안이 아닌가 한다.

이중에서도 지방분권은 어느 면에서 과장된 환상을 지역주민들에게 부각시키는 면이 없지 않다. 마치 지방분권개헌만 이루어지면 열악한 지역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어 지역민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환상을 조장하는 부분이 있다. 지방분권의 문제는 헌법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실과 하위 법령의 문제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물론 헌법에 보다 명확하게 지방정부의 역할을 명기한다면 현재보다 한층 강화된 지방자치를 실현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산적한 지방분권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일 수 있다. 현 헌법 하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강화된 지방분권은 실현가능한 사안이다.

오히려 현재 개헌논의에서 문제는 당초 개헌의 필요성으로 제기되었던 권력배분의 문제는 소홀히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지방분권, 경제민주화, 복지 등 대중 영합적 분야에 의해 국가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들이 어물쩍 헌법에 명기되는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헌법은 최고의 법률로서 개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현실적이면서 미래지향적 개헌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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