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예전에 한 예능프로그램에 방영된 초등학교 2학년생의 시(詩)가 대한민국 아빠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시 제목은 ‘아빠는 왜?’였고, 이 시는 강아지 보다 못한 대한민국 아빠의 무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간결한 시지만 솔직한 내용이 정말 충격적이다. 오늘날 우리 아빠들의 위치가 어떤지 잘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한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도화지를 한 장 씩 나누어 주고 가족의 얼굴을 그리라고 했다. 모두 열심히 식구들의 얼굴을 그리는데, 한 어린이가 그 큰 도화지 한 가운데 엄마의 얼굴을 크게 그려놓고 그 밑에는 언니, 오빠의 얼굴을 그리고 끝에 아기 동생의 얼굴을 그렸다. 그런데 아빠의 얼굴이 없자 선생님은 동정하는 낯빛을 지으며,

"얘 아름아? 너는 아빠가 안 계시는구나, 참 안됐다." 라고 하자 그 아름이는 "아빠가 왜 안 계세요? 계세요."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러면 왜 아빠의 얼굴은 안 그렸어? 라고 하자 아름이는 도화지 뒷면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뒷면을 보니 큼직한 얼굴이 도화지 뒷면에 그려 있었다.

선생님은 "아름아, 도화지가 너무 작아서 아빠의 얼굴은 뒤에 그렸니?" 아름이는 "아뇨, 우리 아빠는 볼 수 없는 분이예요. 아침 새벽에 나가시죠. 밤에는 우리가 잠든 후에 오시거든요. 우리가 못 보는 아빠니깐 안 보이게 뒤에 그린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강남 사는 아이들을 명문학교에 보내기 위한 조건'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는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였다. 아이는 아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아빠는 어느새 돈벌어오는 기계가 되어있다. 꾸준히 돈을 벌어다주거나 아이의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 아빠는 아프지 않아야 한다. 정말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표한 5~6세 어린이의 부모상은 더욱 기가 막힌다. 아버지는?"밥 먹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어머니는 "밥 주는 사람, 옷 빨아주는 사람, 함께 잠자는 사람" 아이들의 머리에 새겨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은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과거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저 늘 근엄하고, 자식들 뒤를 지켜준 든든한 병풍 같은 분이었다. 이른바 ‘아버지의 자리’라는 게 있었다. 온돌문화로 말하자면 아랫목은 아버지만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아버지들의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아버지 부재현상은 원시시대부터 물려받은 유전이 아니라 가정의 소중함, 아버지의 소중함, 자녀양육의 소중함을 물질만능과 맞바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을 책임질 가장은 아버지들이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세상을 향한 푸른 신호등이 되어 주어야 한다. 우리 아버지들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아버지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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