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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명물, 31년 설성반점 아쉬움 속 문닫아주인 음성출신 김태영 씨 교통사고 후 대이을 후계자 못찾아
이종구 기자  |  jong08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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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7  16: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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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사랑에 남다른 애정과 고향발전에 앞장서 오고 있는 김태영 씨(사진.전 재경음성군민회장)가 자신이 운영해 온 서울에서 명물로 소문난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옆 중국집 ‘설성번개반점’을 31년 만에 스스로 문을 닫았다.

고향사랑에 남다른 애정과 고향발전에 앞장서 오고 있는 김태영 씨(전 재경음성군민회장)가 자신이 운영해 온 서울에서 명물로 소문난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옆 중국집 설성번개반점31년 만에 대를 이을 후계자를 못찾아 아쉬움 속에 스스로 문을 닫았다.

서울로 상경해 인생 절반을 몸담았던 특별한 설성번개반점은 그의 모든 열정과 땀이 배어 있는 곳이다. 중국집 설성번개반점 가게 문을 닫는 이유는 사장인 김태영(84) 씨가 올해 두 번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가게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_)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늘 상대방의 처지에서 먼저 생각하는 김태영 씨.

고향주민들을 위해서는 스스럼 없이 주머니돈을 끌르고 이들을 돕기 위해 주저함이 없다.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김씨는 2015년에도 서울 성북구외식업협회장을 맡으면서 회원들 80여명과 함께 고향을 방문해 반기문생가와 기념관을 들러보고 음성지역 상가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며 음성읍내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상경하기도 했다. 그동안 정든 가게를 정리하며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김태영 씨의 앞으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이번호에서 소개해본다.

   
▲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 명물 ‘설성번개반점’이 지난 6월 1일 31년만에 문을닫았다.

고대 앞 명물 설성반점’ 31년만에 폐점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 명물 설성번개반점31년만에 폐업했다.

1987년 문을 연 설성번개반점은 지난 61일자로 문을 닫았다. 사장 김태영 씨는 최근 가게 앞에 현수막을 내걸고 본인이 85세로 고령이고 지난 2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더이상 본업을 계속할 수 없어 매장을 폐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설성번개반점은 이름처럼 번개같은 배달 서비스와 푸짐한 서비스로 고대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학생들을 보호하고 사복 경찰을 내쫓았고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설성번개반점 폐업 소식에 고대 재학생, 졸업생들은 SNS청춘의 한 페이지가 지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고려대 학생들 설성반점의 새출발 응원

 

폐점 소식이 전해지자 설성반점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려대학교의 SNS 커뮤니티부터 동문들의 단체 채팅방까지 추억을 공유하는 자리가 늘어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고려대학교의 한 졸업생이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하고 나섰다.

교통사고 후 몸을 추스리고 노인들을 위한 칼국수 가게를 열겠다는 설성반점 주인 김태영 씨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기 위해서이다.

고려대학생들에게 추억과 정을 선물했던 그에게 졸업생들이 5000원씩 모아 전달할 예정이며, 이 금액은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칼국수를 무료로 먹을 수 있도록 사용하겠다는 계획도 알렸다.

크라우드펀딩을 준비한 고려대학교 졸업생 허재혁 씨는 짜장면을 시켜먹으며 공부했던 학생으로서, 사장님의 따스한 정을 가득 받고 졸업한 고대생으로서 설성반점의 새출발을 응원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맹모삼천지교' 마음으로 설성 문 열다

 

설성은 1987년 문을 열었다. 큰 규모의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김씨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에 고대 후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맹모삼천지교'의 마음으로, 두 아들이 명문사학에 진학했으면 하는 바람에 안암동을 택했다고 한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경찰에 쫓기는 학생들이 하루가 멀다고 헐레벌떡 가게로 들어왔고 그때마다 김씨는 학생들을 뒷문으로 안내했다. 사복 경찰이 뒤따라오면 "남의 장사 방해하지 말고 어서 나가라"고 화를 내며 내쫓았다고 회상했다.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동아리 학생들이 단체 주문을 하면 고생하는 데 한 끼 든든히 먹으라며 무료로 보내주기 일쑤였고, 지갑을 깜빡한 채 찾아온 학생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

 

설성은 내 고향이자 나의 전부

 

김 씨에게 설성은 남다르다. 설성은 고향 음성의 옛 이름이다. 설성은 자신이 자라고, 먹고, 뛰어놀던 어머니 품 가슴만큼 따뜻하고 소중한 고향의 향수가 짙은 곳이다. 그래서 중국집 간판 이름도 설성반점으로 지었다고 한다. 고향을 잊지 않고 고향과 더불어 함께 공생공존하며 살아가려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김씨에게 30년 넘게 지켜온 가게를 정리하는 마음을 묻자 한참을 생각하더니 휴지를 꺼내 눈물을 훔쳤다. 자신이 인생 절반 가까이 몸담았던 설성이기에 특별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했다.

"여기서 번 돈으로 집도 사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곳이야. 죽기 직전까지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는데 교통사고 때문에 중도에 하차하는 기분이라 아주 섭섭하지."

 

노인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볼 계획

 

가격을 올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 것도, 최대한 음식을 빨리 배달하려 한 것도 모두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돈이 없는 학생들이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음식 기다리는 시간이라도 아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김 씨는 학생들이 있기에 설성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만큼 베풀고 싶었다며 웃었다. 은퇴하고 나서는 젊은 학생들이 아니라, 자신의 또래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몇 개월 요양하고 몸이 회복되면 나 같은 노인네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에 가서 칼국수를 만들어 싼 가격에 팔려고 해.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국수는 삶을 수 있거든. 노인네한테 점심 한 끼라도 배불리 싼 값에 먹이고 싶어.“

   
▲ 김태영 씨는 2015년에도 서울 성북구외식업협회장을 맡으면서 회원들 80여명과 함께 고향을 방문해 반기문생가와 기념관을 들러보고 음성지역 상가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며 음성읍내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상경하기도 했다
   
▲ 김태영 씨는 2015년 서울 성북구외식업협회장을 맡으면서 회원들 80여명과 함께 고향을 방문했다.

고향발전 위한 일 발 벗고 앞장

 

김 씨는 재경군민회장직에서 물러나고도 음성군 9개 읍.면 회장들과 함께 정설회를 조직해 고향 발전을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고향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앞장서왔다.

김 씨는 2006년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등반대회 행사가 그만두는 위기에 처하게 되자 5백여만원을 지원하여 행사를 전개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것은 물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1백만원을 기탁하는 등 수없이 남몰래 고향 주민들을 위해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설성반점 김태영 대표 인터뷰〉

 

대를 이어 가족경영을 하지 못한 아쉬움은 없으신지

 

-사실은 저도 큰아들한테 가게를 넘기고 싶어 지난 6년 전에 3년간 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우리 아들은 노동자의 분위기가 업주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똑같은 관계에서 이야기하니까 상당히 이해하기 힘들고 소화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아들은 나이도 적고 3년 정도 하고서는 더는 못하겠다고 해서 지금은 따로 나가서 독립된 다른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제가 후계자를 만들지 못하고 결국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건강 회복 후 앞으로의 계획은

 

제가 몸이 회복되어 건강이 허락하면 지금 우리나라가 급격히 고령화가 진행되어 미처 노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노인 분들이 서울에도 많이 식사를 못하고 있다. 무료급식소가 있다지만 아직 열악한 수준이다. 그런 것을 해결해 보기위해서 행정관청에 부탁을 했고, 찾아가서 저렴하게 그분들이 끼니나 굶지 않도록 서로 공생 공존 하도록 구상하고 계획하고 있다.

 

가족은 어떻게 되시나요

나는 우리 아들 2, 우리식구, 그리고 손녀 5명을 두고 있다. 손자였으면 더 좋았는데 그래도 손녀도 괜찮아 내 자손이라 너무 좋아.

 

마지막으로 음성 군민들에게 한 말씀

 

제가 음성에서 고향이라고 태어나서 음성의 물을 먹고 쌀을 먹고 자라면서 아직도 그 은혜에 보답을 못했고 고향 향수에 대한 은공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라고 하면 다들 알겠지만 고향에 대한 애착과 정열을 쏟아온 정인악씨와 권영선씨 그분들과 함께 협조하여 고향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일익을 담당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좀 더 노력해서 여력이 된다면 음성 군민과 함께 더 나은 음성발전을 위해 공생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모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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