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인간의 탐욕은 한이 없다. 욕심은 자기분수를 뛰어넘는 것이다. 모든 동물 중에서 위장병이 있는 것은 사람뿐이라고 한다. 오직 사람만이 과식하고 위장병을 덤으로 받는다고 한다. 자기분수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욕심을 과식하면 탈이 나는 것이다.

옛날 네 사람이 모여 서로의 ‘희망사항’에 대해 말했다. 한 사람이 “나는 황금 만 돈을 가졌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라고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다른 한 사람은 “돈만 아는 사람 같으니라구. 나는 신선이 되어 학처럼 하늘에 올라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돈이고 뭐고 나는 열 고을 정도 다스리는 대감이 되었으면 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사람은 “나는 황금 만 돈을 지니고 학을 타고 날아 먼 곳에 가서 열 고을을 다스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욕심이 있다. 그런데 이 욕심은 채우고 채워도 끝이 없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많이 차지하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이나 학식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됨됨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솝 우화 가운데에 파리와 불나비의 이야기가 있다. 배가 고픈 파리가 날아다니다 맛이 있는 꿀을 발견했다. 꿀단지의 주변을 돌면서 조심조심 그 꿀맛을 맛보다가 결국은 조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깊이 한복판에 뛰어 들어가 그 날개가 젖어버리고 말았다. 힘을 쓰면 쓸수록 그 꿀 속에 더 깊이 파묻혀 갔다.

그때 불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서 “야! 이 녀석아, 음식을 그렇게 탐욕스럽게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네가 너무 돼지처럼 먹기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빠져서 결국 죽지 않니! 그렇게 비난을 하는 나비 앞에서 파리는 할 말이 없었다. 자기 몸이 점점 하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이 되었다. 촛불이 켜졌다. 이 불나비가 촛불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 색깔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가까이 갔다. 더 잘 보려고 가까이 가다가 결국은 타서 죽었다. 그때 아직도 죽지 않은 채 있던 파리가 나보고 바보라고 하더니 저는 더 바보구만. 한 번에 타 죽네.“라고 했다. 이것은 탐욕을 쫒아 사는 인생, 쾌락을 쫒아 사는 인생이 어떻게 스스로 멸망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우화이다.

임금님이 어느 농부에게 네가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온 땅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임금님의 약속을 들은 농부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자기의 땅을 넓게 얻기 위해서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때로는 뛰기도 했다. 아침 먹을 생각도 잊고 점심까지 거르며 한 발자국 더 걸으면 그만큼 내 땅이 넓어지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쉬지도 않고 피곤도 무릅쓰고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부지런히 걸었다.

해가 서산에 지는 것을 바라보며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걸으려는 마음에서 입에서 단김이 올라오고 앞이 가물가물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끼면서도 정신을 바싹 차리면서 걸었다. 태양이 서산에 넘어가는 순간 임금님 앞에 다다르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걸었다.

이 농부는 거의 뛰다시피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와 임금님이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농부는 임금님 앞에 이르자 너무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일으켜 보았더니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탐욕의 종점에는 ‘불행’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려 보려고 있는 힘을 다해서 이웃도 나라도 생각할 여유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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