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음성군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되었다 지역정책이나 발전과정에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그 혜택이 모든 주민에게 고루 돌아가는 것이 여성친화도시라 한다. 친화도시가 정착 되면 여성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삶이 조금 더 편리하고 안전해질까. 시민참여단인 나는 많은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여성친화도시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대구로 벤치마킹을 다녀왔다. 반지를 상징하는 원으로 길(路)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을 곡진한 삶이 흐르는 반지 길이라 했다. 근대사의 대구를 움직인 여성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골목 투어였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남성 중심적 운동이었다. 여기에 여성들의 첫 국체보상운동 조직체는 대구 남일동 부인 7명이 중심이 되어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 된 도리에 어찌 남녀가 다르리오.’라는 취지문을 발표하고 은반지 은장도 등 많고 적음을 불구하고 패물을 내놓았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여성 운동 조직의 효시였으며 같은 해 (대한매일신보 3, 8) (황성신문 3, 29) 보도되기도 했다. 이 운동의 기록물이 201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런가 하며 100년이 넘도록 누군가의 처로만 기록된 것을 연구와 고증을 통해 7명 중 6명의 실명을 찾기도 했다.

그곳에는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 서중하 여사도 있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8남매를 키우며 ‘끼니는 굶어도 정신은 꼿꼿해야 한다.’라고 자식들에게 교육했다. 반지 길 위에는 많은 선구자의 정신이 살아 숨 쉬었고 여성들의 굳은 신념과 사랑이 그 중심에 흐르고 있었다.

우리 지역 음성에서 출생한 여성 한 분을 떠올린다. 6, 25 전쟁 당시 남으로 남으로 후퇴하던 우리 군인들이 최초로 승리를 거둔 음성 감우재 전투는 동락 초 여교사 김재옥 씨의 목숨을 건 활약이 있었다. 육군 제6사단 7연대는 이곳에서 거둔 승리를 발판으로 하루 15km씩 달려 40일 만에 압록강 근처 초산까지 진격했다. 그리곤 압록강의 물을 떠서 이승만 대통령께 바치기에 이른다. 그로 인해 지금도 초산 부대라는 칭호를 쓰고 있다. 강원도 철원 초산 부대는 음성군과 자매결연 맺고 매년 10, 26부대 창설기념일에 음성군민들이 방문하고 있다.

며칠 전 나는 시민참여단 회원들과 음성천이 흐르는 수정 교아래 복개 천 하상 도로를 둘러봤다. 복개된 총길이는 약 310m, 도보로 약 4분이 걸리는 공간이었다. 몇몇 어르신들은 무더위를 피해 돗자리를 깔고 이곳에서 쉬고 있었고 불빛이 약해 어두운 곳에서 술자리가 벌어진 곳도 있었다. 흐르는 냇물은 송사리가 떼를 지어 다니는 맑은 물이었다. 회원들은 어둡고 습한 이곳을 주민들과 학생들이 언제나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쾌적하고 활기찬 쉼터로 가꾸자는 의견을 모았다. 유난히 더위가 심한 올해는 이곳이 최적의 쉼터가 될 것 같았다. 누구나 찾아와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CCTV 증가 및 가로등 조도 높이기, 어두운 곳 야광으로 도색, 우수관로 경계석설치 등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진행해 나가야 함을 느꼈다.

우리 마을이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로 발전해 나가는데 남녀의 구별이 따로 없다. 양성은 나라의 두 기둥이며 비상하는 새의 양 날개와 같다. 꿈과 희망을 품고 비상을 하려면 건강하고 튼튼한 날개가 필요하다. 어느 한쪽이 약해지면 목적지까지 날기 힘들기 때문이다. 민관이 힘을 합치고 시민참여단이 구석구석 낙후되고 어두운 곳의 눈과 귀가 되어 함께 한다면 우리의 생활공간은 더욱 밝고 안전한 마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다양한 가족들의 행복한 삶이 있는 도시 이곳이 곧 ‘대한민국의 중심, 행복한 음성’ 여성친화도시로 가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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