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정 음성한마음로타리클럽 차기회장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내가 첫 손녀라서 그랬는지 나는 유달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었고 두 분과의 좋았던 기억도 많이 있다. 두 분이 안 계신 지금도 두 분의 기억은 내 가슴 가장 중요한 곳에서 제일 큰 크기로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가 먼저 가시고 쓸쓸히 시골집을 지키시던 할머니를 찾아뵈면 못난 손녀가 뭐가 그렇게도 좋으신지 그저 하룻밤만 자기 옆에서 자고 가라고 부탁하셨었는데…. 어린 시절 방학 내내 할머니 집에서 뛰어놀던 기억은 추억이 되어 언제 그랬었냐는 듯, 공부에 취직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다음에 와서 자고 가겠다는 말만 남기고 그저 기약도 없는 다음만을 속삭이고 돌아선다. 연꽃과도 같은 고귀한 내 할머니에게 서글픔만을 안겨드리고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젊은 나에게는 언제나 다음이 있었지만, 늙으신 내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다음이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왜 그때는 깨닫지 못했을까? 얼마나 서운하고 외로우셨을까. 사랑은 미루면 안 되는 것임을, 지금이 아니면 늦음을 왜 그때는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했을까?

다음에 자고 가겠다는 말 대신에 그때 단 한 번이라도 할머니 옆에서 자고 왔더라면 이렇게 아프지 않을 것을. 결국 시간도 기다려주지 않고 내 사랑 할머니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굳이 나의 이런 경험이 아니더라도 풍수지탄(風樹之嘆)의 가르침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자의 부모님들에게 다음으로 사랑을 미루지 말고 즉각 효행을 실천해야 한다.

풍수지탄과 관련하여 중국의 유명한 시 한 편을 감히 소개하고자 한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 往而不可追者年也(왕이불가추자년야) / 去而不見者親也(거이불견자친야). “나무는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 /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 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부모님이시네.” --『한시외전(韓詩外傳)』--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유랑하다가 하루는 몹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우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귐을 끊은 것입니다.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신 것입니다(子欲養而親不待). 그럴 생각으로 찾아가도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마른 나무에 기대어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날 충격과 함께 깊은 감명을 받은 공자의 제자 중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섬긴 사람이 무려 열 세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삼라만상의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간단한 이치가 삼라만상의 깨달음과 견주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부모님이라는 단어는 세월이 흐를수록 애잔함을 주는 것 같다. 우리 자식들에게 있어 부모님은 언젠가는 되돌아가고픈 고향이자 언제든지 되돌아 갈 수 있는 커다란 안식처 같은 느낌을 주지만 언젠가는 그 고향이자 안식처가 우리에게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이 애잔함으로 나타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네 부모님이 살아계실 적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 그분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을 바탕으로 부모님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앞으로의 미래도 함께 계획하자.

최근에 하나씩 늘어나는 내 흰 머리카락들과 늘어나는 주름을 들여다보면서 하얗게 서린 부모님의 백발과 깊은 주름이 자꾸 떠오른다. 부모님은 언제나 영원히 내 옆에 서서 든든한 버팀목이자 기둥으로 서 계실 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늙어가고 조금씩 갈라지고 부서져 내리는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안쓰럽고 눈물이 난다.

이제 그 기둥이 쓰러지기 전에 더 자주 찾아뵙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도록 움직여야겠다. 사랑은 미루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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