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불타는 화실

함 기 석 시인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한양대 수학과
졸업
·1992년
<작가세계>에
「新고린도전서식
서울사랑」외 4편
의 시를 발표하
면서 문단 데뷔.

물감들이 쏟아지고 있다.

기둥이 흔들리며 비상벨이 울린다.

면도날 같은 그을음 냄새 유리 깨지는 소리

회색곰팡이가 돋아난 <산체스지방의 들판>위로

붉은 물감이 쏟아지고 있다. 그림 속

도망치는 여자 위로 붉은 물감이 쏟아진다.

날아 오르는 까마귀 떼를 덮친다.

순식간에 잿빛 하늘이 핏빛으로 물든다.

물감들이 쏟아지고 있다.

천장이 무너지며 커튼이 불탄다.

산체스 지방의 들판이 불탄다. 하늘이 불탄다.

들판을 달리는 일곱 마리 개들이 불탄다.

들판 옆 <얼어붙은 폭포>가 불타 오르고

벽에 걸린 <하얀 바이올린 소리>가 불탄다.

바이올린 소리 속 붉은 혓바닥 날름이며

꽃들이 불탄다.

눈밭이 불탄다. 바다가 불탄다.

벌거벗은 여자가 불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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