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명 자 수필가

 
 

새벽길을 나섰다. 운전이 서툰 나는 손에 땀을 쥐고 달린다. 자동차로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딸 내외가 출근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도시의 아침은 일찍 열렸다.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 서울로 들어서자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나는 연신 시간을 확인했다. 우여곡절 끝에 딸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문이 열렸다. 딸 내외는 아픈 녀석을 내게 맡기고 큰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출근하는 딸의 뒷모습이 무척 안쓰럽게 느껴졌다.

맞벌이하는 딸은 남매를 두었는데 큰아이는 유치원에 작은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에 출근한다. 아침이면 아이들 챙기랴 출근 준비하랴 전쟁이 따로 없다. 네 식구가 출퇴근을 함께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어젯밤 작은아이 주원이가 갑자기 병이 났고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결과는 전염성 구내염이었고 완치될 때까지 어린이집에 갈 수 없었다. 녀석을 어디에도 맡길 곳이 없어 할미를 급하게 찾은 것이다.

아이 돌봄 서비스 제도를 확대한다는 아침 뉴스에 귀가 번쩍 띄었다. 대부분 도시인이 맞벌이를 하고 있다. 물가도 집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으니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저출산의 심각한 현실은 아기를 키우는 힘든 과정과 연관성이 크다고 본다.

얼마 전 여성들을 위한 휴식공간인 휴(休)라는 여성지원 센터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는 여성들의 가사, 육아, 직무 등 일상의 부담을 덜고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보육시설과 품앗이 육아 모임이 있어 아기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공간이 갖추어져 있었다.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딸을 생각하며 이런 공간이 곳곳에 있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주원이가 나와 단둘이 되자 빙그레 웃는다. 급하게 달려오며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녀석이 할미 애간장을 태운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제 어미 복중에 있을 때였다. 매년 5월이면 내가 사는 음성에서 품바 축제가 열렸다. 3년 전 나는 품바축제장을 누비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음악 소리는 어찌나 크던지 옆 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때 진동으로 전화벨이 울렸고 전화기를 타고 울먹이는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목소리는 내 귀에 천둥소리만큼 크고 또렷이 들렸다. 아기가 횡격막 탈장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며 태어나는 동시에 수술을 받아야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다고 했다. 불안과 초초한 마음으로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 중동호흡기증후군 일명 메르스의 공포가 전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아기를 지키려는 어미의 본능은 메르스의 두려움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공포가 극에 달한 그해 여름에 주원이는 태어났고 수술과 동시에 제 몸무게의 몇 십 배나 되는 엄청난 기계들을 온몸에 휘감고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를 생존의 기로에서 싸우고 있었다. 제 어미는 산후조리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매일 인천에서 아산병원까지 하루 두 번 달려가 아기를 바라보는 것으로 한 달을 지냈다. 그때의 공포로 인해 녀석이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비단 육아문제는 어느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얼마 전 옆집의 젊은 부부와 대화 중 둘째를 낳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육아문제로 버거워하는 맞벌이의 현실을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국가적 차원에서 보육정책이 이루어져 직장과 가정의 문제를 조화롭게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아이이지만 일 가정 어느 한 곳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딸은 언제든 안심하고 아기를 맡길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곤 애정 어린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일터로 향한다. 나도 며칠간 주원이와 잘 지내기를 모색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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