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정 단국대 보건대학원 외래교수

 
 

지금 우리는 명절의 의미가 예전 같지 않은 시절에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명절이 주는 좋은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단점들이 더 부각되어져 이제 명절은 몇몇 사람들에게는 점점 불편한 날이 되어가는 듯 하여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일부만의 문제겠지만, 최근의 우리 사회는 명절을 전후해서 사이가 나빠지는 부부들이 증가하고, 이혼율 역시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짜증나는 귀성길과 명절음식을 준비하는 부인들의 스트레스와 또한 은근한 시댁과의 복잡미묘한 갈등들. 특히 최근에는 남편들도 처가와의 마찰 등을 이유로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그동안 즐겁게 기다려왔던 명절의 좋았던 추억은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각종 매스미디어에서도 명절 전후로 「명절과 이혼률」, 「명절 증후군」, 「효자남편과 사느니 차라리 이혼을 하겠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많은 기사들을 쏟아내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명절 자체가 가정 분란의 주범이자 이혼의 원인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평소 사이가 안 좋은 부부가 명절이 기폭제가 되어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좋으라고 있는 명절인데 이제는 어느 누구에게는 더 이상 좋지 않은 천덕꾸러기 처지가 되었고, 부부간 갈등의 불씨가 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며느리로 같은 공간과 시대를 살아가는 나 역시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나에게도 잠재적인 갈등이 언제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명절과 같은 사회적 관습이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심하게는 이혼까지 이어지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감명 깊게 읽은 어느 스님의 주례사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덕 보려는 마음 없이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배우자를 고르면 아무하고나 살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덕 보겠다는 마음으로 고르면 제일 엉뚱한 사람을 고르게 된다.”라고 하시며 오늘 이 순간부터는 덕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각자의 아내와 남편을 우선시 하고, 두 번째로 부모를 우선시 하고 마지막으로 자식을 우선시 하는 우선순위를 두어야 집안이 편안해 진다고 하였습니다.

즐겁자고 사는 거지 괴롭자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좋으라고 있는 명절이지 싸우고 이혼하라고 있는 명절이 아니잖아요? 스스로 아무런 노력없이 상대가 해주기만을 바라는 부부는 틀어지기 마련이지만, 덕을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주겠다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명절을 전후로 이혼을 하니 마니 하면서 다투고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결혼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경사라고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경사에 있어서 책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소주를 마실 때만 ‘처음처럼’을 떠올리지 말고, 항상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처음 서로를 사랑했던 때와 같이 서로를 감싸준다면 명절증후군이나 명절 스트레스 같은 것들은 작별을 고할 것입니다.

부부의 인연은 사랑으로 시작한 책임이라고 합니다. “저 부부는 참 아름답게 사랑하고 멋들어지게 늙어간다”라는 말을 들으며 살 수 있도록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그거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배려가 생겼으면 합니다.

부디 앞으로 다가올 다음 명절은 그저 귀찮을 뿐인 의무가 아니라, 어릴적 철없던 그때 할머니 집 툇마루에 앉아서 고향에 오는 고모를 기다리며 무작정 좋기만 했던 그 시절의 기억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힘들다는 것을 잘 알지만요.

이렇듯 엄중한 부부의 인연을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순간적인 감정들로 파한다면 얼마나 후회되겠습니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갈등은 갈등만 부를 뿐, 결국은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덕 보겠다는 마음 대신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다음 명절을 맞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온 가족이 정겹게 둘러앉아 추석 밤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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