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 교장, 칼럼니스트

 
 

22년 전 이른 새벽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들녘을 거쳐 백마령 넘어 그리운 고향, 보천에 도착했다.

차례를 지낸 후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과 자녀들이 함께 성묘를 떠났다.

성묘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돌보고 예(禮)를 올리는 것으로 배분(排墳), 배소례(排掃禮)라고도 한다.

조상님들의 묘소에 이르러 성묘를 하게 되었다. 예조참판을 지내신 고조부께서는 지방관으로 계실 때 선정을 베푸셨고(名官編), 증조부께서는 사천 현감으로 한일합방에 십일불식(十日不食)하시어 자절(自絶)하시었으며(節義編), 20세에 남편을 사별(死別)하시고 우리 형제의 어린시절을 보살펴 주시던 조부님의 사촌형수께서는 80평생을 수절(烈女篇)하셨다는 음성군지(陰城郡誌)의 내용과 조부님께서는 초시(初試)에 급제 하신 후 마을 앞동산에 난정(蘭亭)을 세워 마음 맞는 팔도 유생들과 봄, 가을로 시작(詩作)을 하시고 떠도는 걸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셨다는 이웃의 연로한 어른들께 듣게 된 말씀을 한분 한분 묘소에 성묘하며 자녀들에게 들려주었다.

성묘가 끝난 후 넓은 잔디밭에 앉아 부모님께서 살아오신 말씀를 듣게 되었다. 모친께서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시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몰락한 양반가(兩班家)에 출가하시어 공무원인 부친께서 보내주시는 봉급으로 가계부를 쓰시며 7남매를 구김살 없이 키우셨고 부친께서는 자식들을 위하여 공직을 사직하신 후 맨손으로 출발하시어 밤을 낮 삼아 근검절약하는 생활로 자수성가 하시고 아무리 어려워도 남의 도움을 받거나 신세를 지지 않으시고 수입에 맞추어 절제(節制)생활을 해 오셨음을 들려 주셨다.

“가정은 최초의 학교”라고 한다. 페스탈로치는 “가정은 도덕의 학교”라고 하여 가정교육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의 핵가족제도와 산업구조 의 변화속에 가정교육의 부재(不在)로 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중추절의 성묘는 가풍(家風)을 바로 세우고 뿌리교육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위민행정(爲民行政)을 베푸신 고조부님, 진충보국(盡忠報國)하신 증조부님, 烈女로 80평생을 지내신 조부님의 사촌 형수님, 백마산풍월주인(白馬山風月主人)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신 조부님, 절제(節制)와 근면으로 어려움을 딛고 살아오신 부모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생활을 자성(自省)하고 자라나는 자녀들에게는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주어 조상님들께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성장하고 생활하도록 도와주며 존조목족(尊祖睦族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묘(省墓)는 3대(代)가 자리를 같이 한 뿌리교육의 장(場)이 되었는데, 20년 전에는 어머님께서, 12년 전에는 아버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으니 옛 이야기가 되었으며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중추절을 보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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