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식 수필가

 
 

눈이 내린다. 창가에 서서 우두커니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여직원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창문 너머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내리는 눈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 처진 어깨선에서 가늠할 수 없는 수심이 느껴진다.

그리움인지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온다.

무슨 생각을 그리 했을까?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키워 섣불리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 번도 끝에 닿지 못한 그리움의 깊이 때문인지 먼 산들이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고 눈보라는 속속 고요의 주위로 모여든다. 고요 속에서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함박눈이 내리던 밤이었다. 마실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마당 한가운데 우두커니 섰다. 어깨 위로 눈이 쌓이고 있는 것도 잊고, 희미한 호롱불이 만들어낸 실루엣 너머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토닥, 토닥, 탁, 탁, 탁

빠르게 느리게 슬프게 때론 아프게, 악보도 없이 만들어 내는 어머니의 소리, 끊긴 듯 끊긴 이어지는 음과 음 사이에 어머니는 눈을 감으시고 긴 한숨을 쉬셨을까?

장독 위에 쌓이는 눈 소리에 고단한 귀 기울이다가 점점 깊어가는 어둠을 걸어 먼, 아주 먼 시간의 여행을 떠나셨을까? 온 길도 갈 길도 모두 지워진 밤, 다시는 들리지 않는 다듬이 소리 위로 몇 시간의 고요가 덧쌓이고 어머니의 실루엣은 눈에 묻혀 사라진 발자국처럼 다시는 기억의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듬이는 내 추억의 가장자리에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눈이 오는 날 이면 기억의 용마루를 넘어 다듬이 소리가 환처럼 들린다.

눈과 다듬이 소리가 어우러진 늦은 겨울밤의 풍경이 기억 저편에서 슬픔처럼 번져온다.

어머니는 내 추억의 중심에 있지만, 눈이 내릴 때마다 찾아오는 다듬이 소리처럼 슬프다. 창밖에는 몇 시간째 눈이 내리고 있다. 여직원이 섰던 자리, 눈 쌓인 그 자리가 허허롭다. 눈을 감아도 좀처럼 실루엣이 지워지지 않는다. 돌아서도 다듬이 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머리에 어깨에 내려않은 눈을 털고 어머니 곁에 누운 그날처럼, 뒤척일 때마다 다듬이질 해 갓 꿰맨 빳빳한 이불이 내던 소리..., 그 소리가 밤새 머리맡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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