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거실커튼을 열어젖히자 창 넘어 여러 집의 아침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삼십여 년을 보아온 그 모습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성품이 부지런한 분들의 아침이 바쁘다. 나는 숨은 그림 찾듯 한집 한집을 눈여겨본다.

빨래를 널고 아침 운동을 하고 더러는 운동을 마치고 집 앞에 놓인 평상에서 앉아 쉬는 분도 있다. 이제 막 폐지를 실은 낡은 트럭이 들어온다. 벌써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온 듯하다. 바라보이는 앞집 아저씨는 낮과 호미를 들고 공터의 채마 밭으로 향한다. 그분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나는 그곳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길 건너 낡은 상가 이 층에 살고 있다. 특히 관심 있게 보는 이유는 친척 오빠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섬처럼 한적한 이곳은 공동화장실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며 해방촌이라 불린다.

해방촌은 오 육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슬레이트 지붕 용마루가 길게 이어져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살고 있다. 넓은 골목 도로를 사이에 두고 10평 남짓한 가게들이 양쪽으로 즐비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4~5십 년 전에는 오일장이 서는 풍경처럼 활력이 넘쳤다. 집집이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곤 했다. 한복을 만드는 삭 바느질 집, 고추 판매점, 미곡상회, 방앗간, 국밥집, 목로주점 등 시장 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시끌벅적했다. 젊음을 바쳐 자식들을 키워냈고 꿈을 펼치던 일터였다. 애환과 인정이 깃든 마음의 고향이기도 했을 이곳에 지금은 노인들 몇 분이 한가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길 건너에는 신도시로 발전하여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비밀번호 없이는 접근할 수 없다. 이웃 간의 닫힌 철문은 마음의 빗장까지 걸어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좋은 차, 좋은 집으로 상대를 평가하며 편리함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조금은 불편해도 나는 해방촌의 열린 공간이 더 정겹고 편하게 느껴진다.

천성이 부지런한 친척 오빠는 이곳에서 육 남매를 반듯하게 키워냈다. 자식들은 직장과 가정을 꾸려 각자의 둥지를 찾아 떠났다. 얼마 전 언니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지금은 홀로 생활하고 있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안부가 궁금하면 색다른 음식을 가지고 찾아뵙는다. 올해 팔십 세가 되신 오빠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생활하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든다. 언제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이곳은 서로를 걱정하며 인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우리 이웃에는 해방촌을 닮은 이가 있다. 마음의 품이 커서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한 약속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그 사람은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된장과 청국장이 주 메뉴며 매상의 절반은 배달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너럭바위처럼 큰 품을 가졌다. 유년 시절 집안이 가난하여 배고픈 설움을 겪었다는 그녀는 4년째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한 끼 밥을 나누고 있다.

추수가 끝나는 11월이면 햅쌀 500kg을 준비하여 생활이 어려운 친인척과 결손가정, 조손가정, 모자가정, 독거노인을 찾아 20kg씩 나눈다. 배달을 여러 번 도와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방촌의 어르신 두 분께도 마음을 전했다. 줄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녀의 웃음에 나도 덩달아 행복감을 느꼈다.

낙후된 지역을 국비 지원으로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협의체가 만들어지고 해방촌 이장님과 지역주민들이 참여하여 지자체와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해방촌이 도시 재생사업에 선정되어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변화되어 어르신들의 생활공간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창 넘어 해방촌의 아침이 열렸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오빠의 모습이 보인다. 건조대에 빨래가 널리고 지금은 폐지를 정리 중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안심하고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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