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명자 수필가

 
 

밝기도 다른 빛들이 밤바다에 가득하다. 수평선 위의 어둠을 밝히는 저 빛들은 지금 무엇을 위해 저리 빛나고 있는 걸까. 바다를 가득 메운 저 빛은 고기잡이배만은 아닌 것 같다. 등대의 깜빡이는 불빛, 대낮처럼 밝은 빛으로 오징어를 유인하는 배, 아득히 먼 곳의 고기잡이배의 불빛도 반짝인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초입에는 흐릿한 빛이 수없이 떠 있다. 식당에서 필요한 물고기들을 가두어 놓은 야광 부표 표식들, 저 빛들은 누군가를 위해 제각각 다른 빛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

모처럼 온 가족이 겨울 바닷가를 찾았다. 손주 녀석들을 앞세워 모래사장을 걸으며 밀려오는 파도에 환호성도 질렸다. 주변에 얼음 썰매장이 있어 제 어미, 아비가 끌어주는 썰매를 처음 타보는 녀석들은 신바람이 났다. 한자리에 모이기를 희망한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다. 모두 잠든 깊은 밤 나는 바다를 마주하고 앉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인도하는 저 빛, 나도 그 한 줄기 빛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십 년을 함께 걸으며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겪으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원망과 연민으로 가슴앓이를 했던가, 나의 모난 모서리가 수없이 부딪쳐 둥글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곤 속내의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서로를 대하는 눈빛이 순해지고, 자식들도 제 둥지를 찾아 떠났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등짐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을 때 남편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 병마.

투병이 시작되었다.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명치끝을 조여 왔고, 컴컴한 터널 속에 갇혀 우리는 몸을 웅크리고 겁에 질려 출구를 찾으려 눈동자만 반짝였다. 살얼음판 위에 서 있어 조금만 힘을 주면 차디찬 물속으로 곤두박질칠 것처럼 두려웠다. 옆에 있던 그가 홀연히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함으로 한밤중에도 일어나 그의 잠든 모습을 재차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그동안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치유를 했다는 것에 유감을 표했다. 오후 3시에 시작한 검사가 밤 9시를 넘기도록 정밀검사는 이어지고 담담하게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검사가 끝나고 우리는 지옥 같은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열흘이 지났다.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우리는 통합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양쪽으로 6명의 의사가 벽면 가득 영상을 펼쳐놓고 전년과 비교하며 설명했다. 검사 결과는 좋아졌다는 말에 팽팽하게 당겨있던 긴장의 끈이 느슨해지고 주변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필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겨있다. 그렇다! 크게 바라지 않고 하루에 의미를 두고 살아간다면 그 하루는 축복일 것이다.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자유다.

 

남편은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나는 소소한 하루를 의미로 채운다.

남편의 외로운 싸움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철저하게 일과를 정해놓고 실천하고 있다. 잠 못 드는 밤 남편은 자신의 정신무장을 위해 건강에 관한 강의를 듣고 나는 기도하는 마음을 보탠다. 서로의 마음에 작은 빛을 밝히며 우리는 오랫동안 동행하길 꿈꾼다. 함께 걷는다는 의미가 각별해 지는 신년 초, 우리 가정은 물론이고 우리 이웃, 나아가서 지역공동체 모두가 함께 손잡고 오늘도 무사히 공존하기를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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