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이제 한주가 지나면 설날이 돌아온다. 설날은 추석, 한식, 단오와 더불어 우리 민족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 구한말 양력이 들어온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음력 1월 1일에 설을 쇠었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양력 1월 1일을 설로 지정하긴 했으나 양력으로 설을 쇠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10년 국권침탈로 일본 식민통치가 본격화하면서 일제는 우리 문화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 명절을 부정하고 일본 명절만 쇠라고 강요했었다. 그때 우리 설을 구정이라 깎아내리면서 일본이 쇠던 신정을 쇠라고 강요한 것이다. 이때부터 신정(新正)과 구정(舊正)라는 일본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원래 신정과 구정이란 개념이 없었다. 일제가 우리 민족고유의 설을 쇠지 못하게 하고자 신정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우리민족 고유의 설을 구정이라 격하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양력설과 음력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정월(正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 첫째 달 첫날을 정월 초하루라고 한다.

이날은 또 한자로 으뜸 원(元)이나 머리 수(首), 처음 초(初)자를 써서 원단(元旦: 설날 아침),원일(元日),세수(歲首),정초(正初)등 여러 가지로 불렀다. 예전에 정부에서 양력 1월 1일을 명절로 공식화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민간에서는 뿌리 깊은 전통에 따라 여전히 음력 1월 1일에 설을 쇠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에 걸쳐 설을 쇠는 꼴이 됐는데 양력의 것을 신정(新正),음력의 것을 구정(舊正)이라 해 구별했다.

결국 1985년 정부는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설을 다시 인정한 데 이어 1990년부터는 사흘 연휴와 함께 공식적으로 ‘설날’이란 이름을 복원했다. 그러니 요즘 양력설이니 음력설이니,또는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설을 두 번 쇠던 시절의 낡은 명칭일 뿐이다. 용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겠지만 반복되는 언어생활은 의식을 규정하는 힘이 있다. 고유 명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더라도 또한 현행 법 규정에 충실하더라도, 마땅히 우리들은 ‘설날’이라고 부르고, 1월 1일은 ‘신정’이라고 불러야 한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돌아가신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 옷을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설날에 흰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고대의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음의 표시로 흰색의 떡을 사용한 것이며,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태양의 둥근 것을 상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설의 세태가 본래의 취지와는 너무도 다르게 변화되고 있다. 요즈음에는 귀향도 옛말이 되어 부모님이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대도시로 역귀성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설날연휴에는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아예 홀로 집에서 자신만을 위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휴식과 충전의 시간으로 명절 풍경이 달라졌다. 음식도 간편하게 앱으로 주문하며, 고향도 안가고 나를 위한 시간으로 연휴 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부모와 자식 관계 단절, 형제애의 상실, 친척관계마져 소원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명절을 기회로 하여 살아계신 부모님을 찾아 섬기고 멀어져 가는 형제 우애를 다져야 한다.

우리 한민족이 수천 년 이어온 전통인 설 명절에 겸손한 마음으로 조상님께 차례를 정성껏 지내는 일을 스트레스니 구태의연한 풍습이라 비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반만년 역사라고 하는데 반만년의 역사가 고작 남의 나라 것을 따라하고 정작 지켜야할 우리나라 전통문화나 풍습을 외면해서야 말이 되는가. 돌아가신 조상들을 생각하는 마음 못지않게 지금 살아계신 부모, 웃어른, 친척들에게도 도리를 다 해야 한다. 조상님들, 부모와 친척, 이웃과의 만남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고 보다 더 친밀한 인간관계형성을 위해 정성을 쏟는 기쁘고 즐거운 설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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