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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박명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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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0  1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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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이다. 장을 보기 위해 바구니가 달린 손수레를 끌고 집을 나섰다. 오일장이 서는 오늘이 대목임에도 크게 붐비지 않는다. 양쪽으로 펼쳐진 진열대를 꼼꼼히 살피며 지나간다. 각종 생선과 조개류가 가득한 어물전, 채소전, 김 판매대, 각종 과일이 수북이 쌓인 곳에서는 고운 색으로 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필요한 물품에 눈도장을 찍으며 마지막 구간까지 돌고, 되짚어 오면서 물건을 구매하여 바구니에 담을 요량이다.

한참을 걷다 멈춘 곳은 할머니의 좌판이다. 냉이, 달래, 고사리, 무말랭이 등 십여 가지 넘는 물품들이 자그마한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무릎담요 한 장에 의지해 오늘도 찬바람을 견디며 손님을 맞이하는 할머니가 나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대목장은 잘 보셨어요? 라는 내 물음에 대목장 없어진 지 오래됐으며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팔렸다고 하며 옷깃을 여민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시골에서 나오신 할머니들과 중 장년층의 몇몇 사람들이 전부였다. 한산한 대목장이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증평, 음성 등 오일장을 찾아다니며 장사를 한다는 할머니는 올해 80세가 넘었다 한다.

나는 지난 장날도 할머니 노점상에서 채소를 샀다. 진눈깨비가 날리고 세찬 바람이 불어 상인들은 천막을 치고 난로를 피워 언 몸을 녹이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푹 눌러 쓴 모자와 무릎에 담요 한 장이 전부였다. 날씨가 이리 추워 어떻게요. 하는 내 걱정에 할머니는 앉아 있던 의자를 보여 주었다. 열기가 있는 양철통이다. 바닥에 촛불을 켜고 빈 페인트 통을 거꾸로 업어놓았다. 그리고 수건 두어 장을 접어 깡통 위에 깔고 그 위에 앉아 담요로 무릎을 덮었다. 이렇게 하면 촛불의 열기로 따뜻하고 안전한 난로가 되어 견딜 만하다는 할머니의 설명이었다. 작년 늦가을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더니 스님이 굵은 초 한 다발 주었다고 자랑했다. 초 한 자루면 하루는 거뜬하다고 주변의 도움에 감사함을 말한다. 이렇게 번 돈으로 손주들 용돈 줄 때와 목돈이 모이면 학비도 가끔 보탠다는 할머니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추운 날씨를 견디는 지혜와 한없는 사랑의 온도는 주변인들의 마음마저 덥혀 주었다. 명절 준비와 장보기에 빠질 수 없는 곳이 방앗간이다.

며칠 전 가래떡을 빼기 위해 방앗간을 찾았다. 그곳은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떡 시루는 연신 김이 오르고 기름틀도 쉼 없이 바쁘다. 가래떡이 뿜어져 나오는 기계 앞에는 불린 쌀이 나란히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주인 내외의 손놀림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움직인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시골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나온 어르신들이다. 명절에 올 자식들에게 들려 보낼 참기름, 들기름, 고춧가루 등을 준비하느라 시끌벅적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상자에 차곡차곡 담긴다. 나는 어느새 유년의 설날로 달려가고 있었다.

가래떡을 썰어 명절 준비하시던 할머니의 미소가 나를 반긴다. 우리 집은 종일 세배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 세배하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으로 들어오면 그때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보리쌀 항아리에 모아 두었던 달걀도 아낌없이 고명으로 올려졌다. 큰 대접에 가득한 떡국을 땀을 흘려가며 맛있게 먹던 사람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연이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한꺼번에 많이 끓여 놓자는 내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떡국은 바로 끓여 상에 내야 가장 맛있는 것이며 이웃들을 정성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에 꺼진 불씨를 몇 번씩 살려가며 함께 온 사람의 수만큼 만 준비하느라 할머니와 숙모님은 종일 부엌을 벗어나질 못했다. 이웃에게 배고픔과 따뜻한 정을 함께 채워 주었던 깊은 뜻을 나는 한참 후에야 알았다.

할머니! 세월의 무게만큼 사랑도 깊고 넓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꿋꿋이 버티는 힘, 넉넉한 인정으로 떡국을 준비하던 내 할머니, 설을 앞둔 대목장 날 그분들로 인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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