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얼마 전 바다가 없는 나라 라오스를 다녀왔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메콩강 물길 따라 여정이 시작되었다. 섭씨 33도의 폭염과 2월의 날씨는 건기 철로 땅은 메마르고 마른 풀만 논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곳곳에서 풀을 뜯는 가축은 모두 앙상한 뼈가 도드라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바라본 마을의 생활상은 우리나라 70년대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 흙먼지를 날리며 소금 마을에 도착했다.

바구니에 가득한 하얀 소금이 줄지어 우리를 반겼다. 지하에서 끌어올린 염수를 가열하여 소금을 만들고 있었다. 황토로 벽을 높게 쌓은 부뚜막에 사각 철판 용기 20여개가 가지런히 올려있다. 무엇보다 최상품의 소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불의 온도가 중요했다. 그들은 밤잠을 설치며 20여 시간 이상을 아궁이 지키는 정성을 마다하지 않았다. 염전을 만들어 태양 빛으로 자연 건조하여 소금을 얻기도 했다. 나무판자를 덧대어 만든 창고마다 정제된 소금이 가득했다. 염전 사람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곳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질 하얗게 빛나는 소금을 나는 혀끝으로 맛을 본다. 짠맛 뒤를 이어 단맛이 느껴졌다. 암염이라 불리는 소금을 나는 가족을 위해 준비했다.

무엇으로도 소금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40년을 함께 살면서 짜고 싱겁다. 투정을 반복하며 서로의 입맛을 고집했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상대방을 탓하며 갈등의 시간도 겪었다. 한데 나는 요즘 간을 맞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짜고 매운 맛이 남자의 자존심이라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었던 남편이 갑자기 찾아온 몸의 저항에 당황하더니 힘을 잃고 순한 양이 되었다. 양 같은 남편에게 측은지심이 발동해 온갖 정성을 다하게 되는 것을 보니 세상사 모든 이치는 서로 간의 마음가짐인 것 같다.

사람의 몸 가운데 심장은 염분의 농도가 가장 높다고 한다, 짐승의 심장을 염통이라 불리는데 이것은 소금 통이라는 뜻이다. 암이 유일하게 발생하지 않는 곳이 심장이라는 말이 있다. 일정 기간 사람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있지만, 숨 쉬는 것과 소금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을 보면 소금은 단순히 염분이 아니라 생명이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소금의 60%는 바다가 아닌 광산에서 나오는 암염이라 한다.

암염 질그릇처럼 소박함이 이글거리는 불 위에 무쇠솥 같은 강인함으로 소금은 자신만의 색을 태연히 담아내고 있었다. 깊은 수렁 어둠을 견뎌온 긴 시간을 뒤로하고 온몸을 달구어 수증기를 증발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정제된 소금의 미세한 결정체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각을 지녔다.

우리 부부는 요즘 소박하게 때론 단순함으로 마음을 무장한다. 무시로 찾아드는 불안 앞에 무너지는 마음을 곧추세우기 위함이다. 투병은 다이아몬드 같은 소금의 결정체를 만드는 일이다. 스스로 만든 시간표를 어김없이 지키려고 오늘도 분주하다.

나는 오늘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을 접고 간소한 찬을 만든다. 최소한의 양념과 라오스에서 가져온 소금간이 전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라 했다. 소금 마을 사람들은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선한 눈빛, 소박한 미소에서 가장 단순하고 깊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소금처럼 희다 못해 파란빛을 머금은 손주들의 맑고 고운 눈동자가 가슴으로 전해진다. 거기에는 희망과 행복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투병으로 지친 제 할아버지에게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는 전화에 우리는 다시 생기를 찾는다.

살아가는 일이란 궁극의 치밀함이 내재되어 있는 일상에서 나는 단순함을 추구한다. 이웃과 함께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것, 이것 또한 단순함을 마음에 담는 일이 아닐까.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