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란 수필가

 
 

내겐 아이들을 피곤하게 하는 욕심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공부벌레로 만들고자 하는 나의 욕심이 아이들의 마음을 힘들게 한 것을 잘 몰랐다.

추석 전 날, 나와 남편과 우리 세 아이들은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도중 나는 세 아이들 모두가 공부를 강조하는 엄마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어렸을 때 실컷 놀지 못하고 엄마 아빠랑 재미있게 보냈던 추억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가 아무래도 아이들을 통해서 ‘어릴 적 공부를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없애보고자 아이들을 인간 로봇으로 만들려고 애써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평소 아이들이 남들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조금 부족하다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부족함이 내가 인성을 가르치기 전 공부가 우선순위가 되게끔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고 내심 좋아했는데. 아이들에겐 빵점의 엄마가 되어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친정엄마는 부유했던 가정에서 자랐다. 그런데 6.25 전쟁 속에서 미혼자들을 강제 착출 한다고 하여, 배우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 아버지를 집안의 데릴사위처럼 맞아서 친정에서 같이 사셨다. 지금도 처가살이는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처가에서 사셨던 우리 아버지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너무나도 컸던 것 같다.

아버진 우리를 밭에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킬 때도 책을 가지고 가서 일을 하다, 잠시 쉴 때면 그때라도 공부를 하도록 하셨다. 아버지가 항상 입에 달던 말이, 주경야독이었다. 부유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다른 집 자식들보다 일을 더 많이 했던 우리에게 미안해 하시면서도 공부하지 못한 설움을 자식을 통해 꿈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하였지만 나름대로 공부에 욕심을 냈었다. 그렇지만 나는 욕심과는 달리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욕심을 접어둔 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욕심이 아이들에게 대물림처럼 나타나 내가 하지 못한 공부를 시켰던 것이다.

남편과 나는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조그만 나라이고,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나라이다.

내게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공부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작은 나라에서 그래도 공부를 해 놓으면 일자리가 좀 더 넓어지고, 삶의 질도 높아지는 거라며, 언제나 우리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지시하고 가르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추석날의 대화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했고, 그 것이 내게 있어서 잘못된 가르침이었음을 아이들을 통해 반성해 본다. 아이들에게는 공부를 우선순위로 하지 말자.

이젠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삶의 행복에 목적을 두고 자신의 꿈을 좇아 즐겁게 살면 그것이 내가 이루는 행복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금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 힘이 들고 괴롭겠지만 끌려가는 욕심이 아닌 내가 개척하는 욕심, 남을 바라볼 수 있는 선한 욕심이 생기면 아마도 인생은 성공하지 않을까?

아마도 내 친정아버지도 내 마음처럼 똑같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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