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한적한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봄 숲은 연초록에서 진한 초록으로 나날이 변하고, 잎의 반짝거림 또한 윤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산모퉁이 야산에 핀 하얀 찔레꽃 무더기에 눈길이 머문다. 꽃잎 위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가정의 달 오월에는 서로 안부가 궁금하고 만나는 달이기도 하다.

나는 창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친정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노송리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다. 오늘 어른들을 모시고 식사와 쇼핑을 할 예정이다. 내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신다. 낳아준 분과 기려 주신 두 분은 동서지간이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시부모를 모시고 형제는 한집에 살았다. 다랑논 몇 마지기와 산비탈 때기 밭 몇 곳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는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 급급했다. 생각다 못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도회지로 돈벌이를 나갔고, 두 동서는 서로 의지하며 시부모님을 모셨다. 일 년 후 내가 태어났으며 아버지도 객지에서 기반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을 돌보는 작은아버지에 반해 아버지는 시골의 아내를 잊은 듯 돌아오지 않았다. 멀어진 남편의 맘을 잡을 수 없었던 어머니는 동서에게 간곡한 부탁과 함께 돌 지난 아기를 맡기고 집을 떠났다. 그렇게 내 유아기는 엄마라는 단어를 잊어버렸다.

하루에 몇 번씩 아궁이에 불씨를 살려 미음을 끓였으며 잦은 병치레로 보채는 아기와 뜬눈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작은어머니의 사랑과 노고로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가끔 꿈속에서 만나는 고향 집 마당은 비질이 깔끔하게 되어있고 할머니와 작은어머니의 인자한 미소가 햇살처럼 펴져 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의 아버지 집으로 보내지면서 소심한 성격 탓으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혼자라는 두려움에 마음은 늘 가시에 찔린 듯 아렸다. 그럴 때 가슴으로 꺼내 보던 고향 집 마당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얼마 전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가장 잘 보이는 거실 벽면에 걸어두고 들면 날면 보고 있다. 가끔은 한참을 꼼짝 않고 들여다보기도 한다. 나는 가족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특히 자식들의 호출이 있을 때면 남편이 불편함을 호소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선다. 누구에게나 가정이 소중하지만, 나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게 깊다.

가족을 만들기 위해 나는 스물한 살 되든 해 이른 결혼을 했다. 아들딸이 태어났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크고 작은 목소리가 담장 안에 울렸다. 진정한 가족의 울타리가 견고해져 안심하고 지낼 때였다.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친정 고모가 동행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올라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몇 십 년을 기다려온 세월이 한순간에 이뤄졌다. 꿈에라도 한번 만기를 소원했던 어머니, 순간순간 그리도 간절히 생각났던 어머니를 만났다. 그날 집으로 모셔와 작은어머니도 만나게 해드렸다. 두 분은 조금의 원망도 없이 밤을 지새우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했다. 그동안 원망이 컸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오늘 한적한 고갯길을 넘어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침해 증세로 아기가 되어가는 작은어머니와 함께 우리는 꽃구경에 나섰다. 두 어머니를 양손에 꼭 잡고 옷가게에 들려 마음에 드는 색상의 옷도 고르고, 식사를 위해 예약된 식당으로 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 두 분은 시집살이하던 고달팠던 옛이야기를 쏟아놓는다. 그곳에는 23세의 어린 나이에 자식을 혼자 감당할 수 없었던 외롭고 힘들었을 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나는 오늘 어머니에 대한 티끌처럼 작은 원망 하나까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그간의 살뜰하게 챙기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가슴으로 용서를 구했다.

 

깊어가는 실록만큼이나 감사함이 짙은 오월이다. 팔십 노모의 자식 걱정은 아낌없이 준 사랑도 모자라 매일 기도로 하루를 보낸다. 석양의 붉은 노을처럼 아름다운 어머니, 내 어머니를 비롯한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푸른 오월이 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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