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장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한지도 3년이 되었다. 때때로 36년간 내 주변을 거쳐 간 많은 분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오래되어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되는 분들도 있고 최근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내던 분들도 있다. 같이 근무할 때는 개인적인 애로사항에 대하여 조언도 해주시고 공직생활의 올바른 길에 대하여도 염려해주던 분들이 많았다고 기억되지만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나의 탓인지 세월의 무상함인지 그저 기억 속에만 머무는 분들이 많다. 가끔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은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더하게 한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그 부모와 인연을 맺고 죽음으로서 그 인연을 다한다. 부모와 만나는 순간 애틋한 사랑으로 인연을 맺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터는 동료로 2차 관계를, 기타 스치는 모든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인연으로 살아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많은 사람들과 친·인척으로 끈끈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그 들은 나의 삶에 커다란 기둥이고 방패인 것이다. 때론 나에게 큰 짐이기도 하고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하여 한용운님은 ‘님의 침묵’에서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했던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고 했다. ’회자정이(會者定離)‘면 거자(去者)는 필반(必返)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람의 만남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만나는 사람, 오늘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이치이고 순리인 것이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과도 언제 헤어짐의 순간이 올는지 모른다. 부모님과의 인연이 다하는 임종 순간의 안타까움에 인간능력의 하찮음을 느끼고, 지키지 못함을 죄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담대하게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인연을 다한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쁘게 즐거웠던 순간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옛 추억의 소중한 한 조각으로 기억하게 된다.

이제는 좋았던 사람들과의 추억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사연도 다 부질없는 일이고 지나간 과거에 불과한 것이다. 마음속에서나 새겨보고 느껴보는 것이고 입을 굳게 다물고 생각에 잠겨보는 것이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스승님이 들려주신 “100원을 아껴 쓰지 않으면 100원이 모자라서 고생할 때가 있다.”는 말씀, 아버님이 늘 일러주시던 ‘언충신행독경(言忠信行篤敬)’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 아닌가 한다.

죽고 못 살던 친구도 안보면 멀어지는 법이다. 점점 멀어지는 과거의 인연의 끝자락을 붙잡고 마음속 깊이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어서 옛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나의 욕심이고 비굴함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능이리라. 그러나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내 이름을 지워갈 것이다. 벌써 다 잊어버린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면서 매일 매일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대화하고 또 헤어지고, 또 만난다. 세상이 흐르는 굴레 바퀴 한쪽을 붙들고 우리는 땅에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할 뿐인 것이다. 모든 인연은 인간이 순응하고 법칙을 따를 때 원만하게 흘러갈 것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영원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두면 매듭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내가 목마를 때 물을 주고, 비 맞고 서있을 때 우산을 씌워준 소중한 인연들이, 그리고 내가 만든 많은 인연의 매듭들이 오래토록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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