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23 월 15:18
전체기사
PDF 신문보기
오피니언
침묵박명자 수필가
음성신문(주)  |  esbnew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7.23  15:41:3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오랜만에 남편을 따라 아침 산행에 나섰다. 산행이라기보다 마을 뒷산 둘레 길을 걷는 것이다. 왕복 2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중간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여러 곳 있어 시간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하나 우리는 많은 시간을 산에 머물기 위해 둘레 길을 돌아 정상으로 향할 예정이다. 어젯밤 내린 비로 인해 촉촉한 숲길은 상쾌하다.

구부러진 산길을 돌아서는데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칠다. 나는 바람이 치닫는 산 아래를 살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깎아지른 낭떠러지 저 아래 검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졌다. 잘려 나간 돌기둥 사이에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얼마 전 산 중턱으로 둘레길이 생기면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남편에게 저렇게 크고 멋진 바위산이 저곳에 있었다니 하며 놀라자, 수십 년째 멈춰 있는 채석장이라고 했다.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동굴 안에서 더 많은 돌을 채굴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 당시에 아침이면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채석장을 향해 출근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다가왔다.

70년대 초 석()산이 발견되면서 작은 읍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집집이 살림살이가 궁핍했던 시절 돈벌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나 돌을 캐내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으며 목숨을 걸고 하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원석만 채굴하다가 가공품을 만드는 공장도 생겼다. 전국의 솜씨 좋은 석공들이 모여들었고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주민들도 취업했다. 대부분 가공품은 기계를 이용한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돌을 갈고 자를 때 돌가루가 많이 날렸다. 나는 공장 옆을 지나다가 낮은 담장 넘어 일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하얀 돌가루를 덮어쓴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 기억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아버지들은 밤낮으로 땀을 흘리며 온몸으로 자식들을 키워냈다. 종일 돌과 씨름하며 한 달을 견뎌 두둑한 월급봉투를 받아들 때 가족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으로 고단함은 잠시 잊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아버지들, 부인들은 먼지를 많이 마신 것에는 돼지고기가 최고라며 봉급을 받는 날이면 가정마다 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점 앞에 문전성시를 이뤘다. 작은 소도시에 경제적 물꼬가 트이면서 활력도 인심도 넘쳤다.

우리 집에도 한 지붕 여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부엌 달린 방 한 칸이 가족들의 보금자리였다. 내가 신접살림을 시작할 무렵 서너 집이 함께 거주했다. 옆집의 제삿날까지 서로 챙기며 십여 년을 함께 살았다. 남편들이 일터에 나가면 대부분의 안주인은 집안 살림을 했다. 부인들의 생활력과 인품에 따라 가정의 경제와 자녀의 인성도 조금씩 다르게 성장했다. 아이들은 한울타리 마당에서 저마다의 꿈을 키우고 어른들은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면 자기 일처럼 힘을 보탰다.

그들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고 자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바위산을 내려다보며 시간의 흐름 앞에 숙연함을 느꼈다. 한 시대를 함께 건너온 시간, 우리 남편도 직업은 달랐지만, 그들과 한 시대를 힘껏 달렸다. 요즘 우리는 건강을 위해 매일 산에 오른다. 산 정상에 올라 가벼운 운동을 하며 석산에서 일하던 분들과 가끔 만났다. 고단함으로 얼룩진 삶이었지만, 젊음을 바쳤던 그 시절 추억담을 구수하게 주고받는다. 모두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앞만 보고 달리던 걸음을 늦추었다. 이제는 숨 고르기를 하며 천천히 걷고 있다.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의 시간을 잘 견뎌냈기 때문이다.

바위는 찢기고 깨지는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몇십 년째 침묵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이 땅의 아버지처럼 가슴 깊이 묻어둔 상처까지 허허로운 웃음으로 달래고 있다. 이제 깨진 바위 틈새로 나무가 뿌리를 내렸고 습한 곳에는 이끼도 자라고 있다. 산은 자연으로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함은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에 기초한 것이리라.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지나갔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랑이 싹트고 있다. 감사함이 그 위에 내려앉는다. 우리는 한참 동안 바위산을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그때의 활력 넘치는 도시를 꿈꿔본다.

 

음성신문(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삼성-대소 도로확장, 10년 되도록 ‘엉거주춤~’
2
“108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명품학교 수봉초”
3
금왕라이온들 어려운 이웃 주거환경 개선에 앞장
4
맹동 이장들, 이웃 사랑 실천
5
向山 김욱한 화가 제17회 개인전 개최
6
추석 연휴 후유증? 거리엔 쓰레기들이
7
원남면주민자치 작품 발표회 ‘wonderful’
8
BBS 청소년 어울마당 1:1 자매결연 성황
9
음성군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태세 강화
10
음성종합운동장 등 일부 체육시설 개.보수한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27703 충북 음성군 음성읍 설성로 83번길 비석새마을금고 3층 | 개인정보 관리 책임자 이종구 기자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구
사업자 등록번호 303-18-62972 | 제보 및 각종문의 043-873-2040 | 팩스 043-873-2042
Copyright © 음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sb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