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장

 
 

옛날에 사람들로부터 효자라고 칭송이 자자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의 이웃집에는 불효자라고 소문난 친구가 살았다. 하루는 불효자인 젊은이가 물었다. “자네는 어찌하기에 그리 효자로 소문이 났는가? 나에게 좀 알려주시게.” 그러자 효자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별거 없네. 나는 저녁이면 아버님 이불을 펴고 따뜻해 질 때까지 누워 있다가 내어드리고, 외출을 하신다고 하면 신발을 신고 있다가 따뜻해지면 내어 드리는 것이 전부네.” 청년의 친구는 자세히 듣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님 이불을 펴고 드러누웠다. 깜박 잠이든 사이 난리가 났다. “저놈이 하다하다 이제는 제 애비이불까지 빼앗아 가네. 저런 불효막심한 놈!” 아침에도 아버님 신발을 신었다가 매를 맞고 말았다.

어른들이 말하기를 효도를 받고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것도 ‘부모 할 탓’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가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하면 자식도 따라서 부드럽고, 부모의 언사가 거칠고 난폭하면 자식도 따라하게 마련이다. 특히, 어려서 바라보는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은 자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자녀의 일생을 통하여 오랫동안 지침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자식이 효도하는 것 또한 부모의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일을 하는 것도 어렵고, 몸도 많이 아프고 삶이 부치는 때가 많다. 그래도 객지에 사는 자식들 걱정할까봐 알리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다 이웃사람을 통하여 부모가 많이 불편한 것을 알고 집에 온 자식은 언성부터 높인다. “아프면 병원부터 가셔야지요. 용돈 드리는 거 다 뭐하시고. 불안해서 살수가 있어요!” 짜증 섞인 자식의 소리를 가만히 듣고 계신다. 자식들이 때때로 드리는 용돈을 바로바로 써 버리는 부모들은 별로 없다. 자식이 주는 용돈이 아까워 모아두고 손주들 용돈이나 대소사에 보태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는 지인은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억이 넘는 돈이 통장에 있었다고 한다. 언 듯 생각하기에는 ‘참 돈 많고 복이 있는 어른이구나!’하고 느끼겠지만, 자식들 생활이 여유가 있다고 해도 가끔 주는 용돈을 모아 억을 만들려면 아주 쓰지 않고 다 모았다는 얘기다. 용돈을 받지 않을 때보다 더 절약을 하고 안 쓰고 모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생각할수록 안타까움과 원망의 눈물이 밀려오는 얘기다.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이 속없이 던지는 한마디에도 신경을 쓰고, 할 말이 있어도 참고 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말을 적게 하고, 맛없는 음식도 맛있다고 하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면서 어렵게 키워놓은 자식이 돈을 좀 벌었다고 직위가 좀 높게 올라갔다고 부모 앞에서 거드름 피는 것도 받아주고, 시어머니에게는 꼬박꼬박 양육비를 주면서 친정엄마한테는 애 잘못 본다고 책망하는 딸도, 부부싸움을 하고 시부모에 애를 내던지고 가는 며느리도 너그러이 받아주고 이해시키는 것이 우리네 부모들이다.

부모는 자식이 효도한다는 미명아래 어쩜 화풀이 상대인지도 모른다. 일이 어렵고 꼬리면 부모를 찾아 위로를 받는다. 자식이 잘되고 잘 살기를 바라는 일념으로 늘 헌신하며 살아간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면서 아들 며느리와 생활방식의 차이로 마음 둘 곳이 없는 어르신들이 많다. 우리와 다른 시대를 살아오신 어른들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과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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