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종 렬 전 음성교육장

 
 

사람은 태어난다고 인격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곧 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누구나 자녀의 교육에 힘쓰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차이를 산 자와 죽은 자’로 비유했다. 사람은 가르치는 대로 된다. 그렇다고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은 아니다.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에게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 3가지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인즉 첫째도 본보기, 둘째도 본보기, 셋째도 본보기라고 했다. 자녀가 공부에 흥미를 나타내기를 원하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부모가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것이다. 자녀가 몸이 튼튼하기를 원하면 부모가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빚쟁이가 밖에 와서 부르자, 어린 아들을 보고 아버지 안 계시다고 그러라고 일렀다. 아이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밖으로 나가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 안 계셔요."

“안 계셔? 어디 가신다고 그러디?"

아이는 머뭇머뭇하다가 "잠깐 거기 계세요." 하더니 안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이! 어디 갔다고 그럴까?"

빚쟁이한테 들키고만 거짓말쟁이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들을 나무랐다. 그 뒤 그 아이는 아버지의 거짓말 심부름을 자꾸 하는 동안 아버지 못지않은 진짜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구두쇠 영감님이 못을 박으려고 아들더러 옆집에 가서 망치를 빌려오라고 하였다. 옆집 영감님 역시 구두쇠인지라 망치가 닳을까 봐 없다고 빌려주지 않았다. 아들이 맨손으로 돌아오니까 구두쇠 영감님은 골이 나서 "지독한 구두쇠로구나. 하는 수 있니? 다락에 올라가서 우리 집 망치를 내 온"

구두쇠 밑에서 자란 아이는 아버지보다 더한 구두쇠가 되고 말았다. 형이 늦잠을 자면 아우도 덩달아 그러하고, 형이 장난이 심하면 아우도 콧등 아물 새가 없다고 한다.

만일 바닷게가 자기는 옆으로 걸어 다니면서 새끼들에게 앞으로 걷는 훈련을 시킨다면 새끼 게들이 바로 걸을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부모가 바른 본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의 잔소리는 자식을 망치기에 가장 적합한 교육방법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잔소리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등 뒤에서 부모의 삶을 보고 자란다.

아들만 둘 있으면 부모가 어디서 죽을지 모르고, 아들 하나만 있으면 부모는 골방에서 죽고, 딸 하나만 있으면 설거지를 하다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참다운 자녀 교육의 부재현상에 대한 경고이다.

칸트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와 똑같이 행하라고 말할 수 있게 행동하라”고 말했다. 생각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데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부모가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어떻게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자식들의 진정한 성공과 행복을 바란다면 부모가 스스로 모범이 되어 실제의 삶으로 자식들을 이끌어주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나 무심코 저지른 행동 하나하나가 자식들의 심성에 담겨 그대로 따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부디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겨야 한다.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말이 아닌 삶으로 바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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