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텅 빈 교실로 들어선다. 연이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수업 시간이 다가오자 빈자리 찾기가 어렵다. 퇴근하고 급히 오는 이들의 손에는 간식거리가 들려있는 것을 보니 저녁을 거른 것이다. 그러나 서로는 반가움에 눈빛이 따뜻하다. 옆자리의 동료를 위해 먹거리를 넉넉하게 준비해 오는 이도 있다.

나는 유아숲지도사 교육에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터라 늦은 감은 있지만, 등록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낸 용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만만치 않았다. 주 3~4회 수업을 받기 위해 왕복 4시간 넘는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했고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가깝다.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연령대도 30대~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이들은 왜 자격증을 얻기 위해 늦은 밤 하품을 삼키며 주말도 반납하고 이리 달려와 열정을 쏟는 것일까. 백세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실은 한 가지 직업이 평생직장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위기감을 예방하고자, 은퇴자들은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함이다.

수업이 거듭되면서 식물과 곤충의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되었다. 어찌나 신기한지 지금껏 보아온 자연이 신비함을 넘어 경이로움이다. 번식을 위해 아름다운 꽃잎으로 활주로를 만들어 곤충을 유인하는가 하며, 화려한 헛꽃으로 벌 나비를 유혹하여 볼품없는 진짜 꽃을 수정시키는 전략을 쓰는 산수국의 지혜도 놀랍다. 오묘함이란 도처에 깔렸다. 우주 공간의 모든 생명은 이렇듯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과연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자신을 돌아본다.

그동안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최선을 다하기보다 주어진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집안일도 대충 넘기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최선이라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2년 전 남편에게 갑자기 찾아온 폐암 선고는 절망적이었다. 수술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쁘다는 진단 결과를 듣는 순간 가슴은 두려움이 차지했고 생각은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우리는 많은 고민 끝에 병원치료를 완전히 거부했다. 식이요법과 자연치유 쪽으로 방향을 잡고 수시로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우느라 많은 밤을 뒤척였다. 짜인 식단에 맞춰 음식을 만드는 것은 내 차지였고, 주어진 시간만큼 운동하는 것은 남편 몫이었다. 최선을 다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2년이 지났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담당 의사는 ‘흔치 않은 일이네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한다. 그 말에 지금처럼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날 우리는 마음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오늘도 토양학에 관한 공부로 교실 안의 열기가 후끈하다.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욕심이 내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칠월의 삼복더위가 시작될 무렵 이곳에서 처음 만난 우리들은 함께 가을을 지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자격증을 따서 생활에 보탬이 된다는 일차적 문제보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살아온 날의 익숙한 것들로부터 좀 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눈뜸의 과정일 수도 있으리라. 새롭다는 것은 설렘이다. 설렘이 없는 생활은 윤활유 없는 기계처럼 뻑뻑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어제의 내가 새로움에 눈떠 오늘이 조금씩 변화된다면 고달파도 견딜만하다. 나는 어린이들과 더불어 숲의 너른 품에서 찾을 행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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