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종 렬 (청룡초등학교 교장)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 이 빛을 갚으려고 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이웃되는 길

밀리는 파도처럼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보고싶은 얼굴들이 솔바람 되어 살랑 인다. 내 고향 들녘 길. 아카시아 향기처럼 사라졌다 다가서는 아! 그리운 얼굴들.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 했던가. 연어도 멀고먼 바다에서 고향의 강을 찾아 올라와 알을 낳는다고 하지 않는가.

순이와 물장구치던 앞개울과 소꼴먹이며 마구 줄달음질 치던 초록색 들판. 밤이면 모깃불 피우고 멍석 위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 꽃 피우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을 키우던 소꿉친구들. 언제나 인정이 흘러 넘치고 사랑이 살아 숨쉬는 이웃사람들.

갓스물에 고향인 陰城 大所로 초임발령을 받아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줄곧 고향의 가난한 얼굴들과 어울려 울고 웃으며 심장의 박동을 높였던 은버들 속 교정.

박봉에 희생과 헌신만을 강요당하며 오직 2세 교육에 대한 애정과 정열로 인생의 승부를 걸며 우직하게 살았던 고향 陰成에서의 세월들이 새삼 그리워짐은 무슨 까닭일까.

자식교육을 걱정한 아내의 성화에 등을 밀려 부모님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정든 고향 陰成을 떠나 청주에 정착한지 어언 십 수년. 아직도 소년처럼 고향을 잊지 못하고 고향연가(故鄕戀歌)를 부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순전히 내가 센치멘탈하기 때문일까.

숨막히는 아파트 숲, 눈만 뜨면 보이는 아스팔트 바닥, 소음이 득실거리는 거리에 개기름이 번질거리는 소시인들이 틈에 끼어 금방이라도 비명을 지르고 싶은 나날들. 같은 하늘, 같은 곳에 살면서도 이방인이 된 느낌. 사랑이없는 사회, 인정이 메마른 삭막한 이웃, 도무지 정붙일 곳이라고는 없어 매일매일 뒷동산에 올라 노을진 고향하늘을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달랬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사랑의 빚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이 빚을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하면서 산다면 그러한 노력이 바로 이웃되고 되어주는 길이 아닌가. 이제 우리 모두 불신의 벽을 허물고 열린사회, 열린 이웃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영원한 고향 陰成의 행복한 일터 청룡초등학교, 십 수년만에 돌아온 고향 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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