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우리 내외는 해가 설핏한 시간이며 천변을 따라 걷는다. 쉼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철길 아래 지하도를 지나 한참을 걷다 보면 도심을 벗어난다. 확 트인 들녘은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긴다. 상큼한 풀냄새는 코끝을 스치고,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바람은 제법 서늘하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이 시각이면 서녘 하늘 노을에 이끌려 많은 사람이 들녘을 가로지른다.

한여름의 가뭄도 내리쬐는 뙤약볕도 묵묵히 품어 안은 작물은 이제 그 진액을 모아 벼 이삭에 보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벼가 몸을 불리더니 조금씩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리 익을 수 있었던 것은 새벽이슬 헤치며 바삐 오갔을 농부의 수고로움이 그 얼마였든가. 가슴 졸리던 천둥과 번개도 다녀갔다. 올여름 이글거리는 태양 볕에 가뭄은 끝없이 이어져 한 방울의 물이라도 논의로 흘려보내기 위해 밤낮으로 물을 퍼 올리는 시동생을 보면서 지쳐 쓰러질까 걱정을 많이 했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부모처럼 반듯한 논마지기마다 그 색상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벼 이삭을 허리가 휘도록 달고 있는 논이 있는가 하며, 껑충하게 웃자란 푸른빛이 감도는 벼도 있다. 얼마 전 태풍에 쓰러진 벼가 논배미에 드려 누운 것이 두 마지기에 달했다. 일으켜 세울 일손이 부족해 방치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피사리를 못해 벼보다 풀이 많은 논도 있고, 논둑에 심은 수수가 통통하게 영글어 붉은 양파 자루를 씌워놓았는데 새들에게서 알곡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넓은 뜰의 농작물은 다랑이마다 주인의 사랑이 묻어난다.

황금빛이 내려앉은 들녘은 농부의 것만은 아니었다. 산책이나 자전거, 조깅하며 이곳을 지나는 이들도 저마다의 마음에 가을을 담아가고 있다. 뜰에서 그들도 농부 못지않게 아쉬움은 비우고 풍성함을 넉넉히 채우고 있을 것이다.

예부터 농사를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경사회가 근간이던 시대 조선조 태조가 농본주의 정책을 펴면서 시작됐다. ‘농부는 하늘의 언어를 땅에서 실천하고 있는 거룩한 사람이다.’ 농민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다. 농사가 단순히 씨를 뿌리고 거두어 먹고 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한 알의 곡식과 한 그릇의 밥에 녹아있는 사랑과 철학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임을 일컫는 것이다.

농업은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흙이고 농촌은 우리들의 고향이다. 내 뜰을 조용히 들려다 보았다. 올해 짖은 농사는 글쓰기 인데 봄내 씨 뿌리고 제때 김매고 북 주어 잘 가꿔보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건만, 성큼 추수할 때가 되었는데 거둘 것이 없다. 곳간에 쭉정이만 가득할 것이 뻔해 이유를 찾아보았다. 깊이 있는 독서를 충분히 하지 않은 한 탓에 영양 공급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글 한 편이 없다. 게으르고 재능 또한 없어 더욱더 보잘것없지만,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이곳에 있기에 포기할 수 없다. 재능이 부족하지만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를 나는 황금 들녘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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