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식 시인.전 음성군청환경과장

 
 

“엄마!”

마당을 들어서면서 책보를 벗어 마루에 던지고 곧바로 부엌 쪽으로 달려간다. 아무도 없다. 고요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여름 오후의 적요가 마당 가득하다.

부엌 높은 문턱을 익숙하게 넘어 가마솥을 열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보리밥 한 사발을 커다란 바가지에 쏟고 찬장에서 먹다 남은 몇 가지 반찬과 고추장을 찾아 밥을 비볐다.

과외도 컴퓨터도 게임기도 없던 시절 이야기다. 야트막한 부뚜막에는 무쇠 가마솥과 작은 양은솥 두 개가 걸려 있었다.

‘근식아, 밥은 가마솥에 있고 반찬은 찬장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부뚜막에 된장 끓여 놓았으니 먹고 놀아라.’

말씀을 안 하셔도 안다. 오랜 시간 마주해 온 어머니와의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다. 아궁이에는 늘 잔불이 있어서 솥은 따뜻했고, 어머니는 커다란 양푼에 밥을 퍼 넣어 두셨다.

덕분에 우리는 솥뚜껑만 열면 언제든 따스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때 형이랑 부뚜막에 걸터앉아 먹던 비빔밥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내 가난의 유년, 그리움의 중심에 있는 부엌

어머니는 그곳에 많은 이야기를 숨겨놓으셨다. 아궁이 부지깽이, 부뚜막 구석구석 어머니의 사연이 없는 곳이 없다. 어머니의 꿈의 수없이 타오르기고 했고 꺼지기도 했던 곳, 아궁이 앞에는 나란히 앉아 넣어둔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던 조바심의 시간, 군불을 때시는 유난히도 넓어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를 넋 놓고 지켜보던 아득한 그리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리움이 슬프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리움에서는 늘 어머니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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