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영 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누구나 술을 마시게 되면 곧잘 솔직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 솔직함이 좋아서 흰 눈이 소록소록 내리는 날 밤 뒷골목 포장마차의 목로에 앉아 고기 굽는 희뿌연 연기를 어깨로 넘기며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지 모른다.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멋과 낭만을 아는 사람이 아닌가?

술이란? 한낱 음식이요, 배설물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한 잔의 술에 박장대소하는 술자리에서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남녀 간에 불같은 사랑과 이별이 그리고, 한 개인의 출세와 영화를 누리는 계기가 되는 걸 우린 지금껏 많이 보아왔다.

주객은 주유별장이라! 술에 성공과 실패가 담겨있으니 술 보기를 보약 같이 보아라! 노털카 놓지도 말고, 털지도 말고, 카 소리도 내지 마라!

월요일은 월급 타서 한잔, 화요일은 화 가 나서 한 잔, 수요일은 수금해서 한잔, 목요일은 목 이 말라 한 잔, 금요일은 금주의 날 기념으로 한 잔, 토요일은 주말이라서 한 잔, 일요일은 일 안해서 한 잔, 술 마시려는 이유로는 월요일은 원래 마시는 날, 화요일은 화끈하게 마시는 날, 수요일은 수시로 마시는 날, 목요일은 목구멍까지 차도록 마시는 날, 금요일은 금방 마시고 또 마시는 날, 토요일은 토하도록 마시는 날, 일요일은 일일이 찾아다니며 마시는 날. 술집의 종류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여 보면 술집은 모두 인생 강의실이다.

막걸리집 고전학강의실, 소줏집 개똥철학강의실, 색싯집은 회춘강의실이다. 술에 취하면 1단계 신사, 2단계 예술가, 3단계 토사, 4단계 개가 된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제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술은 언제나 수심이며, 수심은 언제나 술인 고로 술 마시고난 후 수심인지, 수심난 뒤 술 인지 아마도 술 곧 없으면 수심 풀기 어려워라. 애주가는 정서가 가장 귀중하다. 얼큰히 취하는 사람이 최상의 술꾼이다. 주신처럼 강열한 것이 또 있을까. 그는 환상적이며, 열광적이고, 즐겁고도 우울하다.

그는 영웅이요, 마술사이다. 그는 유혹자이며, 에로스의 형제이다. 공짜 술만 얻어먹고 다니는 사람은 공작. 술만 마시면 얼굴이 희어지는 사람은 백작. 홀짝홀짝 혼자 술을 즐기는 사람은 자작. 술만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 홍작. 혹자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는 술, 돈, 여자(남자)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신은 단지 물을 만들었을 뿐인데 우리 인간은 술을 만들지 않는가? 술이 없으면 낭만이 없다.

한잔은 건강을 위하여, 두 잔은 쾌락을 위하여, 석잔은 방종을 위하여, 넉 잔은 광증을 위하여 술을 즐기며 적당히 마시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자 주선, 술을 양적으로 많이 먹고 자랑하는 자 주당, 술을 몇 잔 마시고 몸을 못 가누는 자 주졸,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자 동물원 원숭이가 아닐까. 권주가 가사를 보면 한잔 먹새 그려 또 한잔 먹새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위 거적에 덮여 묶여 가나, 곱게 꾸민 상여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한번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랑비와 함박눈이 내리며, 회오리바람 불 때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놀러와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술좌석에서 잔이 한 바퀴 도는 것을 한 순배라고 하는데 술이란 대개 석잔 은 훈훈하고, 다섯 잔은 기분 좋고, 일곱 잔은 흡족하고 아홉 잔은 지나치므로 일곱 잔 이상은 절대로 권하여 돌리지 아니하였다. 술은 홀수 즉 1,3,5,7,9로 마시되 1 不 한 잔술은 안 된다. 3 小 세 잔술은 적다 5 當 다섯 잔 술은 당연하다. 7 適 일곱 잔 술은 적당하다. 9 士 아홉 잔을 마시면 선비가 된다. 11 仙 열한 잔을 마시면 신선이 된다. 13 神 열세 잔을 마시면 주신이 된다. 15 夢 열다섯 잔을 마시면 酒夢이 된다. 술은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양처럼 순하고, 그보다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럽게 되고, 너무 지나치게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 부르거나 한다. 술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인 것이다. 술은 최고의 음식이며 최고의 문화다. 술은 비와 같다. 진흙 속에 내리면 진흙을 어지럽게 하나, 옥토에 내리면 그곳에 꽃을 피우게 한다. 술잔의 마음은 항상 누룩선생에 있다.

술은 백약의 으뜸이요, 만병의 근원이다. 첫 잔은 술을 마시고, 열 잔은 술이 술을 마시고, 이십 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 청명해서 한 잔, 날씨 궂으니 한 잔, 꽃이 피었으니 한 잔, 마음이 울적하니 한 잔, 기분이 경쾌하니 한 잔, 술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사랑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버린다. 술은 우리를 왕자로 만들고 사랑은 우리를 땅거지로 만든다. 술과 여자, 노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평생을 바보로 보낸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술잔을 비울 시간은 아직도 충분하도다. 술속에 진리가 있다. 술은 그 사람의 마음을 비춰내는 거울이다. 술잔 아래는 진리의 여신이 살아 있고 기만의 마귀가 숨어 있다. 술속에는 우리에게 없는 모든 것이 숨어 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의 진리고, 전부이니라 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 그대 바라보며 웃음 짓노라! 까닭이 있어 술을 마시고 까닭이 없어 술을 마신다. 그래서 오늘도 마시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이 좋은 술이라 하여. 과음은 삼가소서! 건강 해치다가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 폭탄주에 3000년간 빠져 사는 극형에 시달리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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