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태종의 측근에는 직언으로 유명한 위징이란 신하가 있었다. 태종은 어느날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정치(治國)에 관해 대화를 가졌다.
“옛날의 군주들은 힘이 강한자도 반드시 멸망했다. 마치 아침이 있는 후에는 석양이 있듯이, 그 원인은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막아 정치의 실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충신이 입을 닫고 있을 때 간신의 아첨하는 말만 듣게 된다. 고로 군주는 무도하고 백성은 배반한다. 정말로 두러운 일이 아닌가?” 위징은 간단히 답했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입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합니다.” 태종이 다시 물었다.
“정치는 물론 백성들의 의식개혁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에 위징이 말했다.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정치가 성공한 것은 어지러웠던 앞시대의 정치나 의식의 개혁을 하려든 것이 아니었고, 황제는 황제의도(道)를, 왕은 왕도(道)를 지킨데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이때 다른 신하들의 이구동성으로 반박했다. “지금은 황제의도나 왕도 같은 덕치주의 정치를 해선 안됩니다. 형벌을 엄하게 하여 마음이 해이해진 백성들을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위징은 세상물정도 잘 모르는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정무를 알지도 못하며 하는 말입니다.”하고 모욕까지 주었다.
그러나 위징은 얼굴 한점 붉히지 않고 점잖게 ‘인간신뢰의 덕치주의’를 당당하게 펼쳤다. 마침내 태종도 위징의 주장에 따랐던 결과 정치는 안정되고 백성은 물론 멀리 오랑캐들까지도 복종하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혁이라는 것은 국민에겐 인기가 있어도 관료들에겐 관심 밖인 법이다.
참다운 개혁은 항상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해당되고 국민은 그 결과만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권력에는 반드시 부정부패가 따르고 재화를 탐내는 관료들이 있기 마련이다.
수양제 집권하의 관료들도 재물을 탐내다가 처벌을 받은자가 부지기수였다. 수양제도 마찬가지여서 탐욕과 쾌락에 빠지고, 사치와 부정의 극치를 이루다가 끝내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같은 사실을 들어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위징은 그런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오?”
“현명한 자도 권력과 재물이 있으면 뜻을 손상하고, 어리석은 자도 그것들에 의해 과오를 범합니다.
사욕에 눈이 어두어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법을 지키지 않아 백성들의 원망을 듣습니다. 항상 자기의 죄를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긴장과 불안 속에 살면서 결국 병이 들고 자손들에게 치욕을 물려주게 됩니다.
이같은 말은 어디까지나 폐하에게만 해당될 뿐입니다.”라고 직언했다. 그러자 태종은 위징이 자기를 능멸한다고 여겨 속으로 노해 그를 혼내주고자 기회를 노렸지만 그사실을 눈치챈 장손왕후가 위징의 직간을 널리 칭찬해 주자 명분을 잃은 태종은 노함을 삭이고 말았다.
오늘날 김대통령도 부정부패 척결, 지역감정타파, 정직성, 도덕성 강조 등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 책임은 김대통령 자신에게 있다고 직언할 이시대의 위징은 없을까?
세경(書逕)에는 ‘아는 것이 어려운게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려우며, 행하는 것 보다 마무리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했다.
지금 이나라에는 관료들의 부패, 정치인의 타락 교육의 붕괴 권력에의 해바라기, 언론의 곡필, 도덕성의 상실등으로 국민의 원성은 극에 달해있다.
과연 이 난국 타개에 조언해줄 자는 누구일까? 제2의 위징이 이나라에 출현하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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