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교수(강동대, 행정학박사)

 
 

어느덧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20년이 흘러가고 있다 새천년을 맞이하며 전 지구 인류가 들떠 있던 모습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21세기의 초입을 한참 지나가고 있다. 21세기가 어떤 시대인가를 규정하는 것은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분명 20세기와는 다른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사실 인류에 있어서 19-20세기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시대였다. 산업과 과학 분야에 있어서 놀라운 발전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인류 삶의 방식과 도구들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들이 이어졌다. 기차와 자동차 그리고 비행기 등은 인류의 이동수단과 활동영역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고, 냉장고, 세탁기 등 각종 가전제품은 인간 삶의 방식을 혁신시켰다. 산업화의 진전과 함께 기아의 공포로부터도 해방되었다. 물론 혁신적인 전쟁무기의 개발은 대량살상과 전쟁을 유발하기도 하였지만, 인류의 폭발적 증가는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난 세기의 혁명적 변화에는 자연과학 분야 지식의 비약적 발전이 뒷받침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자연과학의 과학적 사고방식과 접근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있어서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전반부는 맹렬한 자연과학의 광풍에 이들 학문들은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였고 자연과학적 접근방법을 허겁지겁 차용하고자 하였다. 분석철학, 논리실증주의, 계량분석 등은 오늘날까지 인문학과 사회과학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자연과학적 방법을 통해 명쾌하게 현상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이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맹목적 자연과학적 접근에 대한 반성이 나타났다. 특히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용어의 등장은 자연과학의 결과물이 하나의 거대한 유행적 흐름이라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진리의 절대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고유한 정체성이 다시 제기되게 되었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사회문제해결을 추구하는 사회과학에서 과도한 자연과학적 추구는 사회문제와 학문의 괴리현상을 낳는 원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은 탈자연과학주의 현상을 대표한다. 이들은 근대의 과학적 접근과 진리성을 반대하며 회의론적 상대주의를 추구하였다.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보편적 복지의 추구 등으로 나타났다. 다양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숭고한 이념(?)으로 포장되며 대세를 형성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전후하여 국내에 소개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으로 지칭되는 정치적 행태는 20세기 후반 거대한 미덕으로 떠받들어졌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PC현상은 위선적 기만을 양산하였다. 서구에서 인류를 뜻하는 영어단어 ‘mankind’는 남성중심 용어라는 이름으로 ‘peoplekind’로 불리길 강요당하였다. 타종교인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파트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것이 금지 당 하였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수 없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난민이라는 이민족의 과도한 유입과 이들에 대한 배려는 자국민의 과도한 희생과 국가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 한마디로 가짜와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위선적 행태의 확산에 주류 언론이 커다란 역할을 하였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추진 등으로 대표되는 ‘탈포스트모더니즘’현상이 최근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국내 주류언론의 비판적 기사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산 강화되고 있다. 트럼프대통령의 재선은 거의 확정적이며, 보수당의 압승에서 보듯 영국의 브렉시트는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작년부터 시작되어 그칠 줄 모르는 홍콩의 민주화 운동과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후보의 압승에 의한 재선은 20세기와 결별되는 21세기 새로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결국 가짜와 거짓이라는 위선(僞善)에 지친 인류의 본격적인 반성과 반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와 진리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추구라는 숭고한 가치의 재발견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치보단 사실을 중시하고 사실에 기반을 둔 현상의 설명을 추구하는 흐름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유튜브(YouTube)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와 같은 대체 언론의 출현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20세기 후반의 회의론적 상대주의는 반이성주의이며, 이의 종착역은 퇴보와 야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의 어느 유명 대학교수 출신 장관일가족의 각종 부정행위는 20세기 위선적 행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맹렬한 비판과 항의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합리적 이성의 외침이었다. 가짜와 거짓으로 포장된 위선(僞善)이 아닌 진리에 기반을 둔 자유의 추구라는 인류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하는 국민이 깨어나고 있음의 표현일 것이다. 21세기 전반부는 자유와 진리의 추구라는 뚜렷한 흐름이 대세가 아닐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어느 고교 벽면의 글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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