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서양화가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노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이다. 또 꼰대질은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보면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성향과 이념성향이 특정한 쪽에만 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른과 꼰대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어른이라 한다. 어른은 단지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른이라는 말에는 ‘얼이 있는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아도 얼마든지 어른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은데도 어른이 안 된 사람이 부지기수다.

자기는 어른이라고 확신하고 자랑하고, 훈계하고, 야단치고, 무시하고, 지시를 한다. 사실 꼰대는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누구든 꼰대가 될 수 있다. 세월은 우리에게 왔다가 그냥 가지 않는다. 세월은 우리의 가슴, 몸, 가치관, 여러 관계, 이해, 삶에 다양한 흔적을 남겨 놓는다.

30-40세까지는 이 세월의 흔적이 쌓여 우리 삶의 자산이 된다. 세월의 흔적이 쌓이는 것만큼 존재와 삶이 성장하고 삶의 영역이 넓어진다. 그러나 50세 이후부터는 그간 쌓인 세월의 흔적이 고착화되면서 점차 존재와 삶을 억압하고 가두는 역기능 쪽으로 기운다.

세월의 흔적이 존재와 삶을 넓고 깊게 하기 보다는 기존의 앎과 경험을 강화하는 쪽으로 말이다. 그 결과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기 지식과 경험을 절대화하는 오만에 빠지게 된다. 소위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꼰대로 추락하지 않고 어른으로 비상하려면 쉼 없는 물음과 진실 탐구를 통해 이전까지 쌓아왔던, 혹은 쌓였던 세월의 흔적을 해체시켜야 한다.

오늘의 경험과 발견과 공부를 통해 어제까지 쌓고 쌓였던 세월의 흔적을 정화하고 벗기고 재조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꼰대로 추락하지 않고 어른으로 비상할 수 있다. 사실 꼰대와 어른은 백짓장 한 장 차이다. 꼰대는 이미 도달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아직도 길을 가는 사람이다. 꼰대는 가르치려드는 사람이고, 어른은 공부하려드는 사람이다. 꼰대는 일방통행의 사람이고, 어른은 쌍방통행의 사람이다. 꼰대는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고, 어른은 무한한 진리의 세계에 열린 사람이다. 꼰대는 자기를 절대화하는 편협한 사람이고, 어른은 자기를 상대화하는 겸허한 사람이다. 꼰대는 삶의 다양성에 눈뜨지 못한 사람이고, 어른은 삶의 다양성과 다양성에 눈뜬 사람이다.

가수 서유석의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노래의 가사가 새삼스럽다. 삼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에 등산, 화요일에 기원, 수요일엔 당구장,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상갓집,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 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 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나 볼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비 되고 할배되는 아름다운 시절들 너무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 먼저 가신 아버님과 스승님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지금 노인들이 살아온 길. 그들은 호롱불, 뒷간, 손빨래세대였다. 또 고무신, 보리밥, 공돌이. 공순이세대였다. 사글세 단칸방에서 가족과 자식을 위해 돈을 벌었다. 그들이 열심히 일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건재하고 있지 않는가? 누가 이분들을 꼰대라 비하하는가? 그들은 가난하고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와 열심히 지금의 젊은이들인 ‘캥거루세대’를 키워낸 죄밖에 없는 ‘샌드위치세대’들일 뿐이다. 노인들을 정말 힘빠지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은 주름살이나 백발이 아니다.

바로 노인을 무시하고 방임하는 자식들이나 젊은이들의 무시하는 태도들이다. 100세시대가 되어가는 고령화 시대에 늘어나는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확 변해야 한다.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젊음이 영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인은 젊어봤지만, 젊은이는 노인이 되어 본적이 없어서일까? 프란치스코 교황도 ‘노인이 공경 받지 못하는 사회에선 젊은이들에게도 미래가 없다.’고 했다. 유태인의 격언에 늙은이는 자신이 두 번 다시 젊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젊은이는 자신이 늙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고 했다. 젊다고 자랑마라. 젊은이들이여! 당신들도 하루하루 늙어 가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또한 당신들의 자식들이 당신들을 꼰대라고 비웃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생에 대하여 잘 아는 늙은이와 인생을 우습게 아는 젊은이들과의 사이에 세대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노인은 인간으로서의 역할이 끝난 퇴물이 아니다. 비록 육채가 시들었다 할지라도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그들의 정신을 높이 사야 한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무시당하는 꼰대도, 버림받을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지혜와 충고를 제공하는 존경받아 마땅할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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