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일상을 잠시 접고 미국 서부를 향해 비행기에 올랐다. 지구의 반대편으로 열한 시간을 날아갔지만, 여전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도착한 날이 출발하던 날과 같아 하루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시내로 들어서자 간판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낯선 나라에 온 것을 실감한다.

대륙으로 날아온 지 삼 일째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라 불리는 금문교 투어에 나섰다. 짙은 안개에 덮인 금문교는 교각이 사라진 듯했다. 신비한 모습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사람들은 순간을 동영상이나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우리를 태운 배는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붉은 교각을 지나 금문교 주변을 한 바퀴 돌며 포물선을 그린다. 저녁노을 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변한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는데, 오전 관광으로 그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샌프란시스코는 1906년 대지진으로 도시의 80% 이상이 파괴된 아픈 역사가 있다. 천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와 대공황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마린군까지 잇는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자동차로 8시간이 소요되던 거리를 단 10분 만에 통과하는 기반시설을 갖추는 것은 경제회복에 엄청난 바탕이 되는 일이었다.

토목 공학자이자 시인인 조셉B스트라우스는 이 지역의 경제회복을 위해 금문교 건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조류가 거세고 안개가 잦은 날씨, 수면 아래 복잡한 지형 등으로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고 모두가 반대했다. 조셉B스트라우스는 치밀한 설계로 강철 와이어만 지구를 다섯 바퀴 돌 분량을 투입한 세계 최초의 공법으로 4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현수교를 완공했다. 현수교가 개통하던 날, 아름답고 긴 다리 위에 인파가 가득 차 장관을 이뤘다. 금문교는 미국 토목학회가 선정한 20세기의 현대토목건축물 7대 불가사의로 극찬했으며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다리를 완공한 후 1년 만에 조셉B스트라우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니 설계자의 남다른 혜안이 존경스럽다.

금문교는 문화와 예술이 조화를 이룬 설치예술품이었다. 많은 사람이 다리를 오가며 예술품을 감상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의 장소로도 명성이 높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건만 지금까지 이곳에서 천오백 명 넘는 사람이 떨어져 숨졌다고 한다. 얼마 전 재발 방지를 위해 난관에 거물 망을 설치해 놓았다.

다리를 건너 금문 공원에 도착했다. 금문교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설계자 조셉B 슈트라우스 동상과 금문교 기록들을 살피다가 뜻밖의 동상을 만났다. 군용 백 하나 덩그러니 옆에 두고 고뇌에 찬 표정은 먼 바다를 주시하고 있다.

이곳 금문해협은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출발한 첫 출항지라고 한다. 맥없이 무너진 삼팔선, 사흘 만에 짓밟힌 서울, 그리고 후퇴, 후퇴. 인천상륙작전의 급박했던 상항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맥아더 장군 지휘 아래 적의 퇴로를 끊기 위한 크로마이트 작전,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성공 확률 오천 분의 일이라는 극한 상황이었다. 16개국 유엔 연합국과 우리 국군은 기적의 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그 많은 희생을 남기고 휴전협정을 맺었으나 지금까지 휴전은 지속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 지대다. 냉전 국가였던 동독과 서독이 하나 되는 것을 보고, 내 조국도 이제는 휴전을 끝내고 종전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1906년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된 샌프란시스코는 아픈 역사를 딛고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금문교의 기적을 낳았다. 1950년 우리는 폐허가 된 산하에서 세계가 놀랄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봄이 오면 얼음이 녹듯 남과 북의 대화 물꼬가 트이고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자유로이 오가며 이산의 아픔까지 치유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아버지 세대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고. 우리 세대는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내 후손들은 전쟁이 없는 완전한 평화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전쟁의 총성을 멈춘 맥아더 장군의 첫 출항지 금문해협에서 나는 이렇듯 큰 기적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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