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전 충북반도체고 행정실장

 
 

고려시대에는 ‘고려장’이라 하여 부모가 칠십이 넘으면 깊은 산에 버리고 오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한 남자가 아들과 함께 노모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속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산으로 가면서 나뭇가지를 꺾으면서 올라갔다. 아들이 물으니 “네가 내려갈 때 꺾어진 가지를 보면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려갈 수 있지 않겠니?”였다. 노모와 함께 지게도 산에 버리고 내려오려 하자 아들이 지게를 지고 내려가려했다.

아버지가 연유를 불으니 “저도 아버지가 늙어 70세가 되면 이 지게로 아버지를 져다 버려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노모를 다시 집으로 모셔다가 효도를 다 했다고 하는 설화가 있다.

사실 고려장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에 의하여 지어낸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어린 시절 못살고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수 없던 아이들 중에는 서울에 가서 많은 돈을 벌어 이 지긋한 가난을 이겨내고 힘들게 고생하는 부모님께 효도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집을 떠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 중에는 많은 돈을 벌어 유지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객지에서 몸이 달토록 돈을 벌고 재력을 쌓는 동안 시골에서 농사일로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님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쩌다 여유가 생겨 고향에 게신 부모님께 눈을 돌릴 때는 부모님은 너무 늙어 여행을 할 수 있는 체력도 없어지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어도 이빨이 다 빠져 먹는 것도 힘이 들게 되었다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모든 일이 때가 있듯이 부모님에 대한 효도도 때가 있는 법이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부모님이 위독하실 때 손가락을 단지하여 피를 잡수시게 하여 몇 년 더 사시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 분도 자신이 젊은 시절 손가락에 피를 내어 아버님께 들여 2년을 더 사시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요즘은 병원이 코앞이고 노인들에게 수당도 지급하고 병원비도 할인해 주고 있어 진료하는 것이 많이 좋아졌다.

옛날에 효자만 구할 수 있었던 생선은 사시사철 구할 수 있고 쇠고기, 돼지고기도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아니다. 더욱이 요즘은 영양실조 보다는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는 시대이다.

내가 젊은 시절만 해도 집밖을 나갔다 오면 의례 돼지고기 2근 소주 1병은 기본으로 사가지고 들어오곤 했다. 모시는 어른 두 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고, 젊은 우리도 먹기 위해서였다.

부모님은 은근히 기다리시기도 하고 그냥 들어가면 서운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군대에서 제대할 때는 정말로 돈이 없어서 그냥 집에 들어가면서 많이 민망하기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죄스러움으로 남아있다. 요즘 아이들은 차반이라는 거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다니는 거 같다.

서두에 고려장이야기를 했지만 요즘은 신종 고려장이 생겨났다. 부모가 아프고 모시기 힘들면 요양원으로 보낸다.

매월 요양원비는 통장으로 보내고 찾아뵙는 거는 자기들 마음대로다.

요양원에서는 간호사도 있고 아프면 진료도 해주고 생활하는데 어려움 없이 돌봐준다. 아들딸은 위독하다고 연락이 오면 그때가면 된다.

자식을 많이 낳는 시대도 아니고 거의가 외자손인 시대에 내가 돌보지 않으면 우리 내 부모님을 마음으로 돌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이나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평소에 부모에 대한 관심으로 가지고 전화한통 드리는 것부터 시작해 봄이 어떤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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