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강동대 행정학박사교수

 
 

그 동안 인류에 있어서는 많은 정치체제가 존재하였다. 왕정,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 등 여러 정치체제가 존재하여왔다. 이와 같은 경험은 국가마다 다른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서양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래 왕정과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이 혼재하던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왔던 반면 동양은 오랜 왕정체제에서 20세기를 거치며 민주정으로 변모하였다. 물론 왕정은 물론, 중국의 공산주의 그리고 북한의 세습 공산주의와 같은 독특한 정치체제가 존재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 주류는 아무래도 민주주의 정치체제일 것이다. 국가 운영을 국민들의 투표와 투표로 선출된 대표들에 의해 결정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형식적일망정 대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확립되기까지는 선구자들과 국민들의 오랜 정치투쟁이 존재하여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목숨을 바쳐야 했으며 인신구속과 고통을 감내하여야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운영하는 거의 모든 나라들의 공통된 역사였다.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 할 영국은 물론 미국조차도 독립전쟁, 남북전쟁, 흑인인권운동 등 많은 참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고통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 누군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에서 핵심은 참정권과 투표행위일 것이다. 참정권을 대하는 입장은 각 나라에 따라 달리하고 있다. 참정권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나라의 대표는 미국이 아닐까 한다. 미국은 연방국가로서 각 주(州)별로 투표방식 등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투표일이 공휴일이 아닐 뿐 아니라 성인 누구에게나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성인이 투표권을 행사 위해서는 관할 선거관청에 기간 내에 유권자 등록을 하여야만 한다. 투표를 위해 평일 선거관청에 유권자 등록을 하고, 평일 시간을 내어 투표를 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하여야 한다. 더구나 미국의 경우, 오픈프라이머리, 코커스 등의 당내 후보자선출과정까지 참여한다면 그들 참정권의 무게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지속적으로 참정권을 확대를 추진하여왔다. 건국과 함께 남녀불문 성인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물론 투표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얼마 전부터는 투표일직전 금·토일 전국 투표소 어디에서나 투표가 가능한 사전투표제를 운영하고 있다. 급기야는 최근 개정된 선거법에 의해 만 18세까지로 확대되면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일부도 투표권을 행사할 권리가 주어졌다. 미성년자라고 볼 수밖에 없는 고교생이 유권자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어느 유력한 정치인은 중학생이 투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한다. 순수함과 순진함이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미국과 우리의 선거제도 중 어느 것이 더 민주주의에 충실한 것이냐? 에 답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와 같이 참정권을 확대하고자 하는 정책, 특히 미성년자에게 까지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엄격한 투표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미국과 같이 ‘평일, 유권자 등록자에 의한 투표’라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장 큰 변화는 투표율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투표권을 행사하여야 할 명백히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선거의 엄정성은 크게 강화될 것이다. 최소한 자신들이 뽑은 위정자의 실정(失政)을 보며 자신의 손가락 탓을 하는 푸념은 덜 나올 것이다. 외모, 성별, 학연, 지연 등 투표권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영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 질 것이다. 어렵게 얻어진 투표권을 행사하며 자신의 참정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며 진지한 투표행위가 증가하지 않을까?

우리의 참정권 확대는 어쩌면 민주주의의 가벼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최근 국회의원들이 발휘하고 국무회의를 통과한 헌법개정안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현재 추진하는 헌법개정안은 ‘국민 100만 명의 발안으로 헌법을 개정을 제안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의 근간인 헌법 개정을 마치 ‘번갯불에 콩 구어 먹 듯’ ‘도둑개헌’이 추진되며 이번 국회의원 총선거와 함께 국민투표가 이루어질 예정으로 있다. 과연 이렇게 헌법개정이 졸속(拙速)으로 추진되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 역대 최악의 국회가 현 20대 국회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되기 마련이다. 참정권의 확대가 자칫 민주주의의 남용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금번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는 우리 민주주의의 본질적 무게를 되찾는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후보자들을 꼭 낙선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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