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사월이 활짝 열렸다. 거리는 온통 꽃 대궐이다. 만개한 꽃들은 제각각의 매력을 한껏 뿜어내고 버드나무 가지 끝에 연초록 꽃술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가까이 다가서자 윙~ 하는 소리가 조용하던 주변을 깨운다. 올려다보니 벌들이 한창 꿀을 따는 중이다.

나무는 꽃샘추위와 가뭄을 묵묵히 이겨내고 싹틔우고 꽃을 피웠다. 식물 중에는 자웅동주가 있어 바람을 이용해 스스로 수정하기도 하고 버드나무처럼 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세상에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보고가 있다. 벌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것 같다.

벌은 곤충 가운데 가장 거대한 무리로 세계에 약 10만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 2천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몸길이가 1mm도 안 되는 것부터 7㎝ 넘는 것도 있다. 벌의 입은 꽃가루를 수집하고 운반하기에 알맞도록 적응되어 있기도 하다. 지구상의 수많은 꽃과 식물들의 수정이 벌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얼마 전부터 백야자연휴양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곳은 어린이들의 생태 놀이 학습장이기도 하다. 음성군 관내 어린이집과 유치원 그리고 초중등 학생들이 매년 2천여 명 다녀간다. 숲을 찾는 꿈나무들에게 숲의 소중함을 놀이를 통해 알려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예년 같으면 숲 체험을 온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골짜기마다 울려 퍼지고, 전국에서 휴양림을 찾는 투숙객들로 붐볐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밤이 깊도록 환한 불을 밝히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별빛 내리는 밤하늘을 보면서 위로와 휴식을 취하며 자연의 품에서 힘을 얻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또 얼마나 가벼울까! 한데 지금 이곳은 너무나 조용하다. 코로나 19의 전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휴양림 출입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수목원에서는 식물들을 정성으로 가꾸고 있다. 그 수종만도 8백여 종에 달한다. 서로가 앞 다투어 피기 시작한 꽃들의 아름다운 자태는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다. 이곳은 새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딱따구리가 은사시나무 중턱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 새끼를 키우고 둥지를 떠났다. 동고비 부부는 딱따구리 옛집을 새 보금자리로 선택한 것 같다. 나뭇가지와 젖은 흙을 물어다 커다란 구멍을 메우느라 바쁘다. 동고비의 작은 몸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중이다. 올해는 새끼를 기르는 동고비 가족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길섶 풀꽃들의 의연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은 가만히 눈길을 주어야 만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만의 치열한 생존전략을 위해 지혜를 모으기도 한다. 어려움 속에 피운 꽃은 종족 번식이라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시시각각 변화의 흐름에 따르고 있다.

코로나 19의 확산도 이제 조금씩 주춤해 지고 있다. 치료와 예방이라는 철저한 방어막으로 전 국민이 85일째 하나 된 결과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조금 더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개인위생으로 무장하는 것이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는 지름길이다.

파란 하늘 화창한 봄날이다 하루빨리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마스크를 벗고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며 휴양림 구석구석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숲을 찾아온 어린이들과 솔솔 부는 봄바람을 함께 맞고 싶다.

앙다물었던 꽃잎이 봉긋해지는가 싶더니 오늘은 꽃송이가 활짝 열렸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환하다. 지구의 생존은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듯 오늘도 벌은 꿀을 모으기 바쁘다. 자연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 생명의 등불이 켜지는 사월, 꿈을 품는 계절이 잔인하리만치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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