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물버들이 어느새 연한 연둣빛에서 점점 초록으로 익어가고 있다. 거리의 샹들리에가 되어주던 화사한 벚꽃도 졌다. 벚꽃이 진 자리에는 붉은 꽃받침이 상처인 듯 딱지가 되어 남았다.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뿐 자연은 언제나 제 할 일을 하듯 그렇게 바쁘게 살아간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어오면 부는 대로 떨어지고 남고 그것이 순리임을 우리 사람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상생활이 바뀐 요즘은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그간 관심을 많이 주지 못한 화단을 손본다거나 빈집을 지켜 준 강아지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많아 졌다. 무엇보다도 집안에서 지내는 고양이 ‘먹구’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 ‘먹구’는 작은 딸아이가 지어준 이름이다. ‘먹구’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우리집 발코니에서 발견된 길고양이 새끼였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작년 가을이었다. 한쪽 눈과 머리에 온통 고름과 진물로 범벅이 되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작은 딸아이와 내가 그길로 동물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고 우리 집에서 기르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등은 까만색이고, 턱부터 가슴과 배에 이르는 부분은 하얀색을 가진 아이였다. 작은 딸아이는 까만 털을 가진 그 아이를 ‘먹구’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먹구’는 한쪽 눈과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졌다. 그래서인지 경계심도 강하고 겁도 무척이나 많다. 다행인 것은 들리지 않으니 우리가 아무리 크게 떠들거나, 청소기를 시끄럽게 돌려도 한번 잠에 취하면 깨지를 않는다. ‘먹구’와 가까워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작은 딸아이를 제외한 낯선 사람 뿐 아니라 매일 함께 지내는 남편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다. ‘먹구’ 나름으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있을 테지만 아마도 어릴 때 받았던 상처가 그리 되지 않았나 싶다.

4월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달이지만 정말 아픈 달이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면 담담해 질 수 있을까. 수 백 명의 아이들이 한 순간에 물속으로 사라진 달, 벌써 딱지가 생기기를 바라는 것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그날 이후로 시간이 정지되었을 텐데 말이다. 어떤 이는 이제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몇 개씩은 안고 살아간다. 화려했던 꽃들도 언젠가는 시들고 사람도 언제까지나 푸르른 청춘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아픔을 겪고 상처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픈 상처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약도 발라주고 관심을 가져야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다. 더구나 세월호의 아이들의 상처는 아직도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보듬어 주어야 그들에게도 치유의 시간이 흐를 수 있게 된다. 진실을 보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의 잘못된 선택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아픔도 치유가 될 수 있다.

곁을 주지 않는 ‘먹구’가 못마땅한지 남편은 오늘도 얼굴을 찌푸린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상처투성이의 내 손등을 내밀었다. 그간 ‘먹구’가 할퀸 상처로 내 손등은 길고 짧게 그어진 붉은 선들로 가득했다. 내 손등에 난 상처가 작은 새끼 고양이의 큰 상처만큼 아플 수는 없을 것이다. 남편이, 우리가 부디 ‘먹구’와 세월호 부모들의 그 깊은 아픔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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