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명 자 수필가

 
 

돌 틈사이로 풀이 돋아나려고 애쓰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 사이로 숲이 우거졌다. 우거진 덤불로 딱새 두 마리가 마른 풀잎을 입에 물고 연신 날아오른다. 알을 낳고 품을 안전한 곳을 찾아 튼튼한 집을 짓는 중이다. 자연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올해는 손주 두 명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여러 차례 연기되던 등교가 결정되던 날 부천 사는 외손녀가 전화했다. 다음 주면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신이 났다. “친구들도 궁금하고 학교생활이 기대돼요.” “그렇구나, 축하한다. 너는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야.” 내 마음도 설레었다.

등교가 시작되었고 시골 학교에 입학한 손주는 매일 학교에 간다. 체온을 재고, 가림막이 설치된 책상에서 수업을 받으며 친구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점심을 먹는다. 운동장에서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 사진으로 전해온다. 그 모습이 짠하다.

그런가 하면 부천에 사는 외손녀는 등교 하루를 앞두고 인근 학교에서 코로나 19 감염자가 발생하여 등교가 취소되었다. 6월 중순이 지나도록 학교에 못 가고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받고 있다.

맞벌이하는 제 어미가 딸의 학교 적응 기간을 대비해 3개월간 휴직을 했지만 학교에 한 번 보내지도 못하고 어쩔 수없이 남의 손에 아이들을 맡기고 회사에 복귀했다. 그러니 어미 심정이 오죽할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손녀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혼자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늘고 있다. 어찌 보면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많은 권리를 박탈당한 제일 큰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바이러스 출몰이 없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아이가 사용하던 물건이 작아지면 깨끗이 손질해 두었다가 이웃들과 나눠 쓰고, 바꿔 썼다. 연일 봉사활동과 행사장 참석으로 만남이 잦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며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기 바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코로나 19의 감염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이제는 서로 간의 거리 두기는 필수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감염이 되었는지 모른다는 환자가 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만남도 자재하고 물건도 혼자 쓰기가 생활화되고 있다.

비대면 시대가 열렸다. 바쁘게 움직이던 일손이 멈추었다. 익숙했던 일상이 잠시 흔들리지만, 혼자 하는 일들이 익숙해지고 있다. 단절이 아닌 새로운 만남을 모색해야 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문화 상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요즘 미스터 트롯에 푹 빠져 사는 것도 한 예라 할 수 있다.

코로나 19의 안전주의보는 하루에도 몇 번씩 SNS를 통해 전해온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그들과 이제는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공동의 집’ 지구의 주인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물과 식물, 미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5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발표에 언급한 말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까지 편리함을 위해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고 있었는지 멈춰보니 보였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는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간의 간섭이 적었던 올봄에는 맑고 파란 하늘을 자주 보았다. 그 멈춤으로 인해 사람들의 면역력도 올라갈 것이며,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힘을 잃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공동의 집’이란 사실을 잊고 인간들의 욕심만 채우려 한다면 그들도 더 강한 숙주를 통해 무장할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절제된 생활에서 우리 모두의 면역력이 강화되어 바이러스 종식 선언이 하루빨리 앞당겨졌으면 좋겠다.

새 둥지에서 부화한 새끼가 창공을 날고 손주 녀석들도 친구들과 힘차게 운동장을 뛰어가는 모습이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