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영(청주고등학교 교장)

아침해가 밝게 솟아오르고 하늘이 높고 푸르다. 한가한 마음으로 정원의 감을 따기로 했다.

붉고 소담스런 홍시를 따다보니 노계(蘆溪) 박인로의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안이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난 품어가 반기리 얼슬새 글로 설워하나이다.”라는 시(詩)가 생각난다. 이 시는 박인로가 이덕형을 찾아갔을때 홍시 대접을 받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회귤고사(懷橘故事)를 인용하여 지은시이다.

오(吳)의 육적이 여섯살 때 원슬의 집에 찾아가자 귤대접을 받고 그 중에 세 개를 몰래 품에 품었는데, 하직인사를 할 때, 그것이 굴러 나와 발각되었다. 이에 원슬이 그 까닭을 물으니, 집에 가지고가서 어머니께 드리려 했다하니 모두 그 효심에 감동했다는 일화가 회귤고사이다.

5년전 가을 어머님께서는 8개월에 걸친 투병생활에 저희 7남매를 남겨두고 떠나셨다.
생기사귀(生寄死歸)라고 “인생이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나그네라고도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애별리고(愛別離苦)의 슬픔속에 어머님을 작별해야했다.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을 때, 하루는 북어찜을 찾으셨다. 다른 음식은 마다하셨는데 북어찜을 맛있게 잡수셨다. 매월 몇 차례씩 단골 식당에 가면 북어찜을 자주 내놓는다. 북어찜을 보게되면 어머님 생각에 목이 메이고 살아 계셨을때 숙수지공(菽水之供)하지 못한 불효가 풍수지탄(風樹之嘆)으로 가슴을 치게 한다.

아버지께서는 젊으셨을 때 유도를 하셨고 체격이 건장하셨다. 모시고 식당엘 가면 식사를 잘하셨다. 몇 년 전만 해도 성묘를 가실 때면 앞서서 올라 가셨는데 근래에 와서는 오르시며 힘들어 하시고 식당에 모시고 가면 반도 잡수시지 못 하심에 가슴이 메어지는 듯 하다.
얼마 전 고향집엘 들렀다. “죽으면 썩을 살을 아끼면 무엇 하느냐”시며 밤을 낮 삼아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아오셨든 어머님, 금방이라도 나오시며 반색하시며 아들의 손을 잡아 주실 듯 했지만, 텅빈 옛집엔 낯선 사람들이 오가며 푸르던 대추나무는 돌 보는이 없이 고목이 되어 우리를 맞는다.

덧없는게 세월이요 기약 없는 인생살이, 오늘도 홍시를 따며 아버지를 자주 뵈어야지 마음먹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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