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7월의 뙤약볕 아래 연신 꽃은 피고 진다. 사람의 발길이 닳지 않아 숲을 이룬 야산에 하늘 말라리아가 꽃대를 밀어 올렸다. 허리를 곧게 세운 주홍빛이 눈길을 잡는다. 주변의 식물을 감고 올라선 참으아리도 별처럼 빛났다. 이렇듯 숲에서 볼 수 있는 꽃이 있는가 하며, 관상용으로 재배한 예쁜 꽃도 있다. 한 송이 꽃이 우울했던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도 한다. 그뿐인가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무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그래서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덕담도 있다.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인해 만남이 뜸한 요즘 실내가 아닌 밖에서 회원들과 모임을 갖기로 했다. 5회에 걸쳐 홀로 계시는 분들께 폐 화분을 이용해 꽃을 심어 나누어 드리는 소모임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회원들은 꽃 재배단지를 찾아 꽃과 화분에 들어갈 재료들을 구입해 왔다.

처음 취지는 경로당으로 찾아가 어르신들과 함께 예쁜 화분을 만들어 경로당 환경을 밝고 아름답게 꾸며드리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빠른 전파로 일상이 멈추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재난 문자를 통해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고 바이러스의 공포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들의 놀이 공간인 경로당도 급기야 문이 굳게 닫혔다.

예쁜 꽃을 심어 홀로 계시는 어른들 댁으로 직접 찾아뵙기로 의견을 모았다. 주말을 이용해 마스크를 쓴 회원들이 하나둘 우리 집 마당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눈에는 미소가 가득 담겼고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작업이 시작되었다. 흙과 퇴비를 고루 섞고 있는 사람, 떡잎을 따며 꽃을 손질하는 이들, 폐화분을 닦아 예쁜 꽃이 심어지고 있었다. 정성까지 보태져 하나둘 완성된 화분은 화사하게 사랑으로 피어났다.

고향 집 울타리에는 밤새 전할 말이 많은 듯 아침이면 나팔꽃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싸리나무 가지로 엮어 만든 울타리를 타고 옆집과 우리 집을 오가며 덩굴을 뻗어 정을 엮어 주던 꽃, 울타리 사이로 애호박과 풋고추를 듬뿍 넣어 만든 지짐이와 싱싱한 푸성귀가 자주 오갔다. 골목길을 한참 돌아야 가는 옆집은, 울타리 사이로 서로의 집안이 훤히 보였다. 나팔꽃처럼 손을 입에 모으고 큰소리로 친구를 부르면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엄마의 색다른 음식이 울타리를 넘나들고 내 유년의 우정도 그곳에 머물렀다. 보랏빛 나팔꽃은 내 안의 슬픔도 위로해 주었다.

몇 년 전에 다녀온 이탈리아는 ‘꽃의 도시’라 불리는 피렌체가 있다. 중세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의 창궐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암흑기를 벗어나 낡은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중심의 르네상스 정신이 태동한 곳이다. 피렌체에는 꽃의 성모마리아라 불리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있다. 붉은 타일로 장식된 거대한 돔 큐폴라는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가장 거대한 꽃봉오리로 피어났다. 그 향기는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화가 되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암흑시대라 불린 만큼 숨 막혔던 상황 속에서 피렌체는 인간의 본성을 일깨우고 창의력을 표출하는 예술을 부흥시켰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찾아온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꽃의 도시, 꽃의 성모마리아라 불리는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과 ‘신곡’의 저자 단테의 생가를 찾았을 때 가슴이 마구 뛰었다.

꽃을 전해드리기 위해 어르신 집을 찾았다. 여러 가지 인연으로 자주 가는 곳이다. 저녁 식사를 하던 어르신은 인기척에 잠긴 대문을 열어준다. 마당 가득 폐지가 수북하다. 화분을 받아든 어머니가 환하게 웃는다. 미소가 소녀처럼 곱다. 꽃에는 묘한 힘이 있어. 우울했던 집안의 공기가 꽃향기로 채워지고 있다.

이탈리아 ‘꽃의 도시는 암흑 속에서도 르네상스라는 숭고한 꽃을 피웠다. 지금의 우리의 일상이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안고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현재 상황이 아주 힘들어도 차분하게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며 물질보다 인간의 본성을 깨우고 소소한 것에서 만족을 찾는 새로운 문화가 자리하지 않을까. 그 길 위로 사랑의 꽃길이 펼쳐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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