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많은 날이 지나갔고, 또 많은 계절을 맞이했다. 숨 가쁘게 지나 온 하루하루였다. 현대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팔십으로 본다면 나는 삼분의 이를 산 셈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나이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된다.

계절로 치면 지금 나는 가을을 지나고 있는 중이리라. 그래서 일까. 요즘 하는 일이 꽤나 많다. 그런데 대부분이 금전적으로 이익을 주는 일보다는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즐겁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치열하고 힘들었던 봄과 여름이 있었던 까닭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 내 유년 시절은 참 추웠고, 인내의 시간들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아들만을 최고라 여기는 가부장 적인 아버지 때문에 언니와 나는 언제나 양보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언니와 나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아니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이는 큰오빠보다도 두 살이나 위인데도 언니는 큰오빠보다도 학교를 늦게 들어가 후배가 되었다. 또한 어린 나이었음에도 언니는 여덟 살 터울인 나를 업어 키웠다. 허랑한 남편을 둔 어머니는 품앗이로 4남매를 키우느라 집안일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고 그 일은 언니와 나의 차지가 되었다. 우리 집 기둥이었던 큰오빠는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살림 밑천이었던 큰딸 언니는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취직을 해야만 했다. 나도 고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결국은 야간 고등학교로 옮겨 학업을 마쳐야 했다.

여름, 뜨거운 태양 빛과 비바람이 있어야 과일이 결실이 좋다고 했다. 남편과의 연애는 참으로 달콤했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라고 했던가.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은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었다. 시어머님의 호된 시집살이와 결혼 전과는 너무도 다른 남편으로 인해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수필 쓰기에 인연이 닿아 공부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희열도 맛보게 해 주었다. 글쓰기는 내 안의 있는 열정을 끌어내주는 단초가 된 격이다. 그때부터 내 배움의 열망이 마음껏 쏟아져 나왔다.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대학을 나오고 청주와 충주를 오가며 밤이 늦도록 공부를 한 덕에 글쓰기와 관련된 자격증도 꽤 많이 취득을 했다. 그것은 아이들의 논술수업을 하는 교사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주말도 없을 만큼 수업도 많았다. 치열했던 나의 삼십대와 사십대였다.

가을, 모든 것을 품어주는 계절이다. 과일들은 여름의 태양과 비바람을 이겨내야만 달고 탐스런 과육으로 결실을 맺는다. 오십이 들어서면서 나도 무언가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전한 일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문학석사’라는 영광을 안았다. 정말 바쁘게 사는 요즘이지만 이렇게 마음이 즐거울 수가 없다.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열심히 배우면 자신의 것이 되니 불평하지 말고 공부를 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남을 주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한다. 내 강의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함박웃음을 지어 주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학생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외국인 이주여성과 대학생들을 보면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가을은,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계절이기도 하다.

비움으로 인해 더없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 내 나이 쉰다섯, 나도 이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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