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강동대 사회복지과 교수

 
 

1988년 서울올림픽은 세계사에 있어서 동서냉전을 종식하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이전 두 번의 올림픽경기는 동서냉전의 여파로 반쪽 올림픽경기에 머물렀다. 1980년 모스코바 올림픽은 소련(러시아 전신)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규탄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자본주의국가들이 불참하였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국가들이 보복 차원에서 역시 불참하였다. 올림픽 경기가 지나치게 정치화하였다는 자성과 함께 제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에서 유치한 최초의 올림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1988년 서울올림픽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동구(東區)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 선수들이 올림픽 경기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신흥공업국으로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이들 선수들을 통해 방송을 통해 이제까지 자신들을 속여 왔던 정부와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근본적으로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영향을 받아 우리 대한민국이 굶주린 국민들이 들끓는 나라로 알았는데, 자신들보다 더 잘 사는 모습을 보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여파로 동구 유럽에서 민주화운동이 서서히 확산되었고, 결국 1989년 동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순차적으로 공산주의체제의 국가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는 북한, 쿠바 등 소수의 나라들만이 낡은 이념 체제를 유지하며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 1990년대 초반 프란시스 후쿠야마라는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경쟁이라는 역사의 이념대결이 자본주의의 일방적 승리로 종식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이후 그는 ‘트러스트’라는 책을 통해 향후 국가발전에 있어서 ‘사회적 자본’이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사회적 자본이 높은 나라는 번영하는 반면 저 신뢰 사회는 낙후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당시 저자의 분류에 의하면 일본은 신뢰가 높은 국가로 분류한 반면 우리나라는 낮은 국가에 위치하고 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사회적 자본에는 법치주의, 정책의 예측성과 안정성 그리고 국민들의 신뢰와 관련한 행동 등을 들 수 있다. 법원의 판결은 당사자들에 있어서는 죄의 유무에 대한 판결을 의미하지만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행동지침의 역할을 한다. 정책에 대한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은 정부에 대한 신뢰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또한 개인 간의 관계에서 약속·계약의 준수는 사적 활동에 있어서 중대한 결정요소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는 ‘이성적 합리성과 예측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외국 저명한 학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는다 하여도 사회적 자본이 높은 나라에서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고 그런 나라가 발전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국가는 제도적으로 사회적 자본을 제고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내부에서 보면 사회적 자본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현상들을 너무도 많이 목격하게 된다. 이를 주도하는 것이 국가기관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최근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그 사안의 내용보다는 당사자의 정치 혹은 이념적 위치에 결정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게 한다. 그 재판의 결과가 결코 ‘사회적 행동지침’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신임 여성 대법관은 ‘대법관은 임명직으로서 결코 국민의 지지나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선호가 판결에 반영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취임연설을 보여 우리 사법부의 판결을 되돌아보았다.

또한 최근의 경제부처의 수장인 어느 장관은 자신의 집을 매도하기 위해 전세갱신계약청구권을 행사하는 임차인을 내보내기 위해 뒷돈(?)을 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한심한 정부 고위공직자의 처신에 대한 비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낳게 할 심각한 행동임에 분명하다. 일련의 부동산정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의 급격한 상승, 전세대란 등 주택의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또한 최근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폐쇄와 관련하여 감사원 감사과정에서 담당 부처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비협조는 물론 공문서까지 몰래 파기하였다고 보도를 보며 분노를 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커다란 좌절감을 느꼈다. 이런 일련의 정부 정책들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을 낳게 하는 중대한 행위라 할 것이다.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이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몰라도 지난 10월 16일 대검찰청의 발표에 의하면 소위 3대 ‘거짓말 범죄’라 불리는 ‘사기·무고·위증과 관련한 고소·고발이 최근 크게 증가하였다고 한다. ‘정의(justice)’를 다루는 전·현직 장관이 심각한 거짓말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현 상황을 보면 거짓말 범죄가 크게 증가하였다는 것이 새롭지 않다.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법치주의, 정책의 예측성과 안정성, 국민의 신뢰행위 등 모든 지표에 있어서 심각한 위기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붕괴하고도 그 사회의 미래가 있다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위정자(爲政者)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벌이는 반신뢰적 행위들은 언젠가 그 대가를 치룰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도 전가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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