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나영 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장

 
 

올해는 좀 더 서둘러 김장을 하자는 친정엄마의 엄명이 내려졌다. 몇 년 전부터 엄마는 김장하실 때마다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김장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이나 하는 거지…. 내년에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올해도 엄마는 같은 말씀을 또 하셨다. 겨울을 알리는 절기 ‘입동’이 지나면 어김없이 우리 집은 김장 담그는 일정을 잡고 서울 사는 여동생 부부가 내려와 합류하면서 일 년 중 가장 큰 집안 행사인 김장 담그기를 실시한다.

이날 엄마는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매우 민첩한 모습을 보이신다.

무를 썰고 파를 다듬는 어설픈 내 모습을 무척이나 답답해 하시며 폭탄급 잔소리가 시작된다. 반면 나보다는 살림에 좀 더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이는 여동생은 엄마의 칭찬을 받는 날이다.

어릴때는 동네에서 김장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들며 시끌벅적했던 기억이 난다.

워낙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난 엄마는 동네 대소사 행사에 늘 앞장서 일을 하셨던 분이셨다.

6남매 맏며느리로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그래도 엄마에겐 그 시절의 추억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엄마의 이야기 보따리는 한번 시작하면 끊임없이 계속 된다.

오늘날 김장풍속은 많이 변했다. 절임배추나 배추소 등의 재료가 판매되고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인스턴트 김장’의 시대로 들어섰다. 이제 겨울뿐만 아니라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해먹을 수도 사먹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이제 김장을 담그지 않는 가정도 많아지고 있다. 전국 각 지역의 특별한 별미김치도 주문하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주문김장’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주문만 하면 집 앞까지 택배로 배달까지 해주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 편리함을 뒤로 하고 올해도 엄마와 두 딸은 무를 썰고 다른 쪽에서는 무채를 고춧가루 등으로 버무려 김치소를 만들고 두 사위는 절인 배추를 씻어서 채반에 널어 물을 빼서 옮기며 모처럼 힘자랑에 나선다. 이 모든 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때 까지 엄마는 소대를 이끄는 장교처럼 진두지휘하신다.

아침 일찍 시작한 김장 담그기는 오후 점심 때를 넘겨서야 마무리 되었다. 엄마가 끓여주시는 배추국은 너무나 달고 맛있다. 돼지고기를 삶아 만든 수육을 배추 속에 싸서 먹는 맛 역시 최고다. 달달한 막걸리 한잔에 덕담까지 주고받으면 우리 집 김장 담그기 행사는 무사히 성황리에 막을 내리는 것이다.

주말이라 고속도로에 차가 밀린다며 조금 서둘러 나서는 동생 부부를 보내는 것이 언제나 아쉬운 엄마 그래도 차 트렁크를 꽉 채운 김치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모든 고단함을 잊으시는 듯하다.

김장 김치는 바로 김치냉장고에 넣지 말고 하루 정도는 바깥에 내놓은 다음에 넣어야 더 맛있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시는 엄마, 전에는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이 솔직히 잔소리처럼 귀찮게 들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해 한해 기력이 전 같지 않으신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잔소리도 이제는 사랑가로 들린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엄마의 김장 담그기 행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함께 해왔던 김장 담그기는 우리 가족이 함께해온 소중한 추억이다. 한국인의 김장풍속은 점차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하는 김장 담그기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올해 김장 맛은 작년보다 더 맛있어야 할텐데... 라고 말씀하시는 엄마한테 올해도 어김없이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 세상에서 우리 엄마 손맛이 최고에요! 아주 맛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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