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그 숲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시쯤이었다. 숲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길을 안내해 주던 네비게이션이 멈춰 버리고 말았다. 길도 없는 허공에 멈춰선 네비게이션을 끄고 길을 따라 차로 한참을 그렇게 올라갔다. 이정표도 있었으니 잘못 온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물론 친구의 지인이 이끄는 앞차도 있던 탓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과연 길이 끝나는 언덕위에 하얀 조립식 건물이 보였다. 그곳은 숲의 관리사무실로 그 앞에 주차장이 있었다.

이곳은 친구가 한 달 전 쯤 점심예약을 해 놓은 곳이다. 이런 곳에 무슨 음식점이 있을까 싶었는데 차에서 내리니 계곡 건너편에 숲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예쁜 집이 보였다. 편백나무 숲이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공기가 정말 시원하게 느껴졌다. 숲속의 예쁜 집은 황토로 지은 펜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처럼 잠은 자지 않고 점심만 먹고 편백숲을 산책하러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식사를 예약 받는 모양이었다. 펜션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그 계곡 위로 다리를 놓았는데 그곳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게끔 꾸며져 있었다.

펜션 안과 밖, 주변들은 주인장의 솜씨로 장식된 소품들 때문인지 더욱더 운치가 있어 보였다. 자연에서 얻은 들풀과 들꽃, 나뭇잎들은 펜션 이곳저곳을 장식한 것 뿐 만이 아니라 점심 상 위에서 음식을 받쳐주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눈으로 감탄하고 혀로 놀라는 맛이었다. 음식 하나하나에 주인장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차마 젓가락을 대기가 아까울 정도로 음식 전체가 작품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음식에 취해 주인장과의 담소에 끌려 두 시간여에 걸쳐 점심시간을 보냈다.

소화도 시킬 겸 편백나무 숲을 산책하기로 했다. 산책로 입구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잣나무 솔길과 편백 신선길, 우리는 잣나무 솔길로 가자는 의견을 서로의 표정으로 주고받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길을 옮겼다. 그건 아마도 조금 전에 만났던 등산객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잣송이가 들은 비닐봉지가 무거워 보였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주울 수 있다는 무언의 의합이 맞았을 테다. 하지만 잣송이를 줍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끈적끈적한 진이 나와 만지기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담아 갈 봉지가 없으니 잣송이를 주워봤자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다시 처음의 그 마음으로 편백 숲길을 제대로 걷기로 했다. 계곡을 끼고 걷는 숲은 그득했던 마음의 때를 벗기는데 충분했다. 또한 가끔씩 만나는 밤나무 숲길에서는 크지는 않지만 통통한 밤들이 오종종하게 모여 있어 그것을 줍느라 가던 것도 잊는 때가 만났다. 그렇게 멀지 않은 길임에도 우리는 두 시간 여를 정신없이 웃고 떠들며 숲을 헤매다 나왔다. 산속의 어둠은 생각보다 일찍 내렸다. 펜션주인과 인사를 하고 우리는 그 숲을 나왔다.

숲을 빠져 나오고 내리막길을 어느 정도 달리자 다시 네비게이션이 길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내 핸드폰의 알림 소리들이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카톡, 메시지, 부재중 알림 소리로 소란스러운 것은 내 전화만이 아닌 친구의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는 전화를 받으며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다름 아닌 내 아들의 전화였다. 연락이 안 되는 엄마의 소식을 묻는 다급한 목소리가 운전을 하는 내 귀에도 들려왔다.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밥을 먹고, 숲을 산책하고 아무 잡념도 없이 온전히 마음과 몸을 그곳에다 빠뜨렸다. 연락이 안 되는 아내와 엄마와 친구의 안부가 걱정돼 그토록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몰랐다. 그곳은 시간조차도 가둬버린 공간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 친구와 나는 무언의 눈빛에서 언젠가 또다시 그 숲에 갇히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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