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자 수필가

 
 

홍시다. 산비탈 양지쪽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섰다. 잎을 모두 떨구고 오롯이 감만 달았다. 주홍빛 가을을 듬뿍 담은 감나무 위로 물까치 떼가 잿빛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든다. 족히 열댓 마리는 되지 싶다. 연신 날고 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주변에 저수지가 있어 저리 많은 걸까. 숲에서 열매를 따는 녀석들도 여럿 눈에 띈다.

밭 주인은 일손이 부족해 수확을 못 한 것인지 까치밥으로 남긴 것인지 물까치들은 횡재했다. 감나무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홍시만 쪼아 먹곤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른다. 홍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할머니 냄새였다. 고향 집 싸리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감나무는 두 팔을 벌려 나를 반겼다. 두엄더미 옆 감나무는 봄이 되면 상아빛 꽃을 마당 가득 떨어뜨렸다. 달짝지근한 감꽃을 주워 먹기도 하고 목걸이를 만들어 걸었다. 꽃이 진자리에 열매는 옹골지게 맺었다. 거센 바람에 떨어진 풋감을 할머니는 따뜻한 소금물을 풀어 항아리에 담았다. 떫은맛을 빼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엄마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지루하여 가끔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곤 했다.

찬 서리 내리는 늦가을이면 탐스럽게 익은 주홍빛 감을 까치밥 몇 개 남기고 모두 땄다. 굵고 잘생긴 감은 껍질을 벗겨 처마 밑에 매달았다. 바람과 볕에 수분을 내어주는 긴 여정에 들어갔다. 땡감은 볏짚을 켜켜이 깔고 동고리에 나누어 담아 소죽 쑤는 사랑채 초가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달빛과 햇살이 머물고 겨울이 깊어지면 달콤한 홍시가 되었다.

나는 할머니 젖가슴을 만지며 긴 겨울밤을 보냈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칭얼거리는 내게 옥수수 대공처럼 거친 손바닥으로 등을 쓸며 자장가를 불러줬다. 남들 다 있는 엄마의 부재가 궁금해 하루에도 몇 번씩 되묻던 어린 손녀에게 단지장골 밭에 홍시 따러 갔으니 곧 올 것이라고 달랬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윗목에는 홍시 두 개가 있었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밤 호롱불 아래서 먹던 홍시는 그리움이 벤 엄마의 맛이었다.

삶의 징검다리를 부지런히 건너 결혼도 하고 두 아이가 태어났다. 감꽃이 떨어지는 계절에 엄마는 가슴에 홍시를 안고 선물처럼 나타났다. 따뜻한 밥에 아삭한 김장김치 색다른 찬이 정갈하게 놓인 엄마의 밥상은 남편 앞에서 내 어깨가 처음으로 으쓱해졌다. 이 따뜻함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엄마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날도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기 넘어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해소천식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위급상황이었다. 나는 단숨에 달려갔다. 전에도 여러 번 이 증상으로 입원했다는 설명과 입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내가 사는 작은 읍내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주사와 일주일 치 약 처방으로 진료는 끝났다. 그 후로 그 증세는 씻은 듯 나았다. 30년을 넘게 괴롭히던 엄마의 병은 나 때문에 생긴 병이었다. 세상의 혈육이라곤 딸자식 하나뿐인데 만날 수 없어 얻은 병이었다.

그해 여름 우리 가족은 엄마와 함께 옛 고향 마을 찾았다. 그리움을 묻었던 구부러진 신작로가 환하게 우리를 반겼다. 단지장골 밭으로 오르는 조붓한 산길을 올랐다.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에서 돌멩이를 들썩이니 가제가 기어 나왔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골짜기를 깨웠다. 단지장골 밭의 감나무도 흐뭇한 미소를 짓는 듯했다.

엄마가 팔십 세가 되던 그해 우리는 손을 잡고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4박 5일 동안 낮에는 온천욕과 이국적 경치를 구경했고, 밤이면 따뜻한 다담이 방에서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서로의 위로가 되었다. 그리곤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사랑을 담았다.

무심히 흐르는 우리의 시간은 주홍빛 둥근 감이 곶감이 되었듯, 구십 노모는 아무리 주어도 모자란 사랑을 품어 안고 이제나저제나 내 소식에 어두운 귀를 세우신다. 나는 오늘도 엄마께 안부를 전하자 안심한 듯 웃는다.

감꽃이 필 무렵 엄마를 만났던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도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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