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배려는 사소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다 보면 배려의 싹이 탄생한다. 당신의 작은 배려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깜깜한 밤에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와 마주친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군요.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갑니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침묵의 성자로 알려진 인도의 영적 스승인 바바 하리다스가 쓴 '성자가 된 청소부'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중요성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어느 수필가의 글에 있는 이야기다. 서울 신설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할 때였다고 한다.

신설동 집안의 복이 계속 자기네를 따라오게 하려고 방마다 창호지를 북북 찢고 청소도 대충 했다. 복이 그 집이 싫어서 자기를 쫓아오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봉천동 집에 도착해서 빈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이 집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고 창호지도 멀쩡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집에 오셔서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방마다 연탄불을 피워 놓았습니다. 방 하나에 연탄 두 장씩이면 온종일 따뜻합니다. 저는 다음 주소로 이사를 갑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축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축복의 말 한마디가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고 위로해준다.
가난한 청년이었던 마틴은 캘리포니아의 작은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입학 전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온실재배 사업의 현장 감독이 마틴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현장의 인부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커다란 나무 밑에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마틴은 나무 그늘에 누워 허기를 달래야 했다. 그때 현장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이놈의 마누라가 나를 코끼리로 아나? 혼자서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싸 보낸 거야? 이봐, 누구 이 샌드위치와 케이크 한 조각 좀 먹어줄 사람 없어?”
마틴은 그 현장 감독이 내민 샌드위치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감독의 하소연은 매일 이어졌고, 덕분에 마틴은 점심때마다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마틴은 한 달이 지나 급료를 받기 위해 사무실에 찾아갔다. 급료를 받고 나오면서 경리 직원에게 “감독님께 감사의 말을 전해주세요. 그리고 부인의 샌드위치도 정말 맛있었다고요.” 라고 말하자, 경리 직원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부인이라니요? 사모님은 5년 전에 돌아 가셨어요. 감독님은 여전히 부인을 그리워하며 혼자 살고 계신답니다.”
진정한 배려는 내가 하는 일을 자랑하거나 나타내지 않기에 상대방을 불쾌하거나 부담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동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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