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창고 천장에서 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삼생이는 귀를 삐죽 세웠다. 실룩샐룩, 사냥감에 집중한 엉덩이가 귀엽다. 삼생이는 삼색 고양이로 한 달 전, 우리 집 창고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부터 애교가 많았던 삼생이는 임신한 것 같았다. 아빠는 고양이를 싫어했지만 창고에 쥐가 많아 끈끈이를 설치해 놓은 참이었다. 우리는 끈끈이를 치우고 귀여운 파수꾼을 맞이했다.

삼생이는 연신 실룩샐룩 엉덩이를 흔들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수로 천장에 있는 쥐를 잡으려고 할까. 구멍도 없고 들리는 건 소리뿐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삼생이를 관찰했다. 천장에서는 쥐는 무엇을 갉아 먹는 듯 소리를 냈고 삼생이는 언제든지 뛰어오를 자세를 하고 있다. 갉아먹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삼생이는 빠르게 물건들 사이로 후다닥 올라갔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무렇게나 쌓아 올려진 물건들- 박스나 자루 안 쓰는 냄비 등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드드 떨어졌다. 삼생이는 사냥감을 놓친 거보다 자기 소리에 더 놀란 눈치였다. 나는 삼생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삼생이는 금세 골골거리며 아까 일을 잊은 듯 내 품에 들어왔다. 나는 삼생이를 꼭 안아주었다. 주변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쥐를 잡아야 한다는 집념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모습이 내 모습 같다.

나는 고양이를 매만지며 오늘도 나의 실패와 마주한다. 며칠 전 나는 응시한 시험에 떨어졌다. 한두 번도 아닌 몇 번이나. 스스로 바보가 아닐까 의심이 들고 자괴감에 빠진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 시험은 내 인생을 바꿀만한 큰 시험도 아니었다. 단지 무료한 삶을 조금 벗어나고자 한 작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패배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실수를 떠올릴수록 실패가 더 크게 느껴졌다. 애초에 왜 나는 도전하려고 했을까. 근원적인 질문까지 파고든다. 나는 고양이를 더 꼭 끌어안았다. 그러자 삼생이는 내가 귀찮은 듯 내 품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털을 핥았다. 그리고 스크래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자신의 발톱을 긁었다. 고양이는 자신의 즐거움을 금방 찾는다. 그건 나와 다르다. 난 즐거움을 쉽게 찾지 못하고 딱지를 긁듯 실패만 복기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삼생이가 어질러놓은 물건들을 주웠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위로를 받을수록 마음은 가라앉았다. 그동안 무책임하게 위로했던 말들이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 같다. 그때 나는 분명 진심이었지만 고통까지는 몰랐다. 나는 말을 쉽게 뱉고 쉽게 잊는다. 어쩌면 벌일지도 모른다. 이런 끝도 없는 자책을 하며 물건들을 치웠다. 치운 김에 정리도 했다. 삼생이는 볕이 보이는 곳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나도 고양이 옆에서 볕을 쬐었다. 오랜만에 청명한 날씨다. 저런 맑은 해라면 내 괴로움도 태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해를 오래도록 바라보다 눈이 시려 두 눈을 꼭 감았다. 맑았던 해가 가시가 되었다. 눈을 감자 붉은빛이 아른거린다.

맑은 해도 오래 보면 시리다. 하물며 괴로움을 더할 것이다. 나는 내 괴로움에서 눈을 거두고 삼생이를 쓰다듬었다. 삼생이는 내 손길 때문인지 아니면 볕이 좋아서인지 다시 골골거린다. 그 소리가 내 안에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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