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마당이 있는 집은 들풀과의 씨름으로 봄을 맞이하는 듯하다. 겨울이 끝나기 전부터 서둘러 나온 정원의 복수초 옆에도 들풀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마당 곳곳에도 실하지는 않았지만 돌 틈에 바짝 엎드려 숨을 고르고 있었던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봄볕을 쐬어서인가 이제는 버젓이 마당 여기저기 바랭이와 돌나물, 민들레, 씀바귀, 광대나물, 망초가 엄지손가락 반절만큼의 크기나 올라왔다. 어디서 날아 왔을까. 들녘이라면 뜯어먹기라고 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들고나는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기도 했거니와 집을 지키는 문지기인 두 마리의 견공들의 털 때문에도 먹기는 힘들다.

지난겨울은 지독하게도 추웠다. 들풀은 땅속에 씨앗 하나 묻어 놓고 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바람을 알기라고 한 듯 봄볕에 저리도 우르르 키를 키우고 있으니 흐뭇하다 하겠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내 손에는 호미가 들려있으니 말이다. 마당이 있는 집 주인은 겨울에도 호미를 쥐고 살아야한다고 마을의 어르신이 예전에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겨울은 얼마나 추었는지 풀도 보이지 않아 호미를 좀 늦게 쥔 셈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방이 터 있는 단독주택인 우리 집은 강아지와 길고양이들의 안식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작년 봄, 우리 집에 짙은 회색 빛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어느 날 밤 문득 들어와 정착을 했다. 그래서 이름을 ‘밤이’라고 지어 줬다. 그리고 몇 달 뒤 10월의 어느 가을 밤 외식을 하고 오던 우리 부부를 따라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집으로 들어 와서는 눌러 앉았다. 한 마리는 검은색 바탕에 발목과 콧잔등이 하얀색으로 곰을 닮았고, 한 마리는 호랑이 무늬를 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곰이’와 ‘랑이’로 지어 주었다.

그때 만약 그 녀석들에게 밥을 챙겨 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까? 세 녀석은 우연찮게도 모두 수놈이었다. 덩치가 커진 ‘밤이’가 올 봄 발정이 났는지 다른 고양이들과 싸움을 하는 날이 많아졌고 다치고 들어오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다치는 것도 걱정이 되고 멀리 나가 며칠을 들어오지 않는 것도 불안해 세 녀석 모두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했다. 그것이 사단이 될 줄이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성격이 순한 ‘곰이’와 ‘랑이’는 순조롭게 중성화 수술에 성공을 했다. 그런데 덩치도 크고 겁도 많은 ‘밤이’를 그만 병원 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동물병원이 이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며칠 뒤 찾았지만 ‘밤이’는 그새 길고양이가 되어 암고양이를 따라 내 앞에서 보란 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밤이’를 잃고 이틀 뒤 ‘곰이’ 마저 ‘범백’이라는 고양이 바이러스로 잃고 말았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껴주고 보살펴 주었다. 멀리 가지 못하게, 싸우지 못하게, 내 눈 앞에서 사라지지 못하게 중성화 수술을 해 주었다. 이런 내 생각과 행동들이 옳은 것이었을까. 나는 며칠을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나의 집착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글 속 문구가 떠오른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결국 나는 고양이의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고양이에게 빼앗긴 것이었다.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내 것이길 바라는 소유욕이 나를 아프게 한 것이었다.

내 안의 소유의 집이 얼마나 튼튼하고 컸었는지를 알 수 있었던 며칠이었다. 이제부터라도 ‘가짐’을 당하지 않도록 마음의 울타리를 활짝 열고 살아야겠다. 더불어 혹여 바람에 들풀 씨앗이 날아와 마당에 널브러지더라도 가끔은 눈 질끈 감아주는 아량도 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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