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마음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네모난 게임 세상에 빠졌다. 나는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사람이다. 지금 하는 게임은 캔디 크러쉬로 모바일 퍼즐게임이다. 같은 색 캔디를 세 개 이상 모으면 터지는 게임으로 단계별로 미션이 있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건 하트다. 총 5개의 하트가 주어지는데 게임에 실패할 때마다 하트는 없어지고 게임에 성공하면 하트는 유지된다. 마지막 하트가 사라지고 나는 초조해졌다. 다음 하트가 채워지기 위해선 25분을 기다려야 한다. 승리 미션으로 컬러 폭탄과 봉지 캔디 부스터 1시간 무제한을 받았는데 하트가 없으면 하트가 채워지는 시간까지 그냥 날려야 한다. 다행히 운 좋게 광고가 떴다. 광고를 보면 하트를 준다. 캔디 크러쉬에선 아이템을 부스터라고 부른다. 나는 부스터와 하트를 모으기 위해 무의미한 광고를 시청한다.

처음부터 부스터를 이용하면 게임은 쉽다. 문제는 부스터는 무제한이 아니다. 과금을 이용해 아이템을 살 수 있지만 그래도 나름의 철칙이 있다. 게임에 돈을 쓰지 않을 것. 하지만 과연 그것을 철칙이라 할 수 있을까? 하루 24시간 중 거의 두 시간 혹은 그 이상을 게임과 광고 보는 데 쓴다. 광고도 더 나오지 않아 종료하게 되면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한 장 더 읽었으면 하는 늦은 후회가 남지만 게임의 작은 승리는 진짜 사탕처럼 달콤하다. 어쩐지 그것은 정말 노력으로 이룬 성과 같다.

내 인생도 부스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이런 부스터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삶의 괴로움을 제거해주는 부스터가 있다면 인생은 조금 더 쉽지 않을까.

며칠 전 합평하는 지인과 내가 쓰는 글 이야기를 했다. 지인은 나에게 얼마큼 썼는지 물었고 나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해 힘들다 말했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완벽한 상태가 필요했다. 완벽한 준비, 완벽한 마음, 완벽한 문장에서 출발하고 싶었다. 문제는 그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이다. 사실 어떤 것이 완벽한 건지, 감도 잡을 수 없다. 형체가 없는 완벽을 기다리며 나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게임으로 괴로운 마음을 잊고 있었다. 게임의 작은 승리가 진짜 나의 성취인양 착각하면서.

이제 남은 하트는 없다. 이동 횟수는 한번, 젤리 하나만 깨면 클리어. 다음 게임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마음대로 바꾸기나 롤리팝 해머를 사용해서 젤리를 깨고 미션을 클리어할까 고민한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게임을 기를 쓰며 통과하려는 걸까.

어쩌면 나는 해야 하는 과정 보다 만들어지지 않는 성과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른다. 실패라는 낙오가 싫었다. 두려웠다. 실패를 깨줄 부스터가 없던 나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머리로만 생각했다. 그 결과, 나는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게임을 종료했다. 대신 노트북을 켜고 한글 문서를 클릭했다. 여전히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완벽한 문장은 떠오르지 않았고 써야 할 갈피도 잡지 못했다. 그래도 써보기로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완벽이 아니라 지금 시작하는 것이다. 첫 문장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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