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꽃피는 사월이 왔다. 사월 하면 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마다 사월이면 꽃샘추위가 반드시 찾아와 시샘을 부린다. 그러나 그 시샘 속에서도 봄꽃은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많은 이름 모를 들꽃이나 야생화는 벌써부터 피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담장 사이나 밭둑에 냉이랑, 꽃다지 그리고,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앙증맞게 “나 여기 있어요.”하며 실낱같은 미소를 날린다. 순간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지나간다. 나는 ‘아! 이 아이들도 바로 꽃이 아니고 무엇이랴.’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교육자였던 내가 자연의 꽃에만 눈이 멀어 진정한 내일의 꿈나무인 꽃을 몰라보다니, 머리가 긁적여 졌다.

꽃 중에는 별의 별 꽃이 다 있다. 봄 하면 제일먼저 엄동설한을 이기고 피는 복수초를 들 수 있다. 어느 시인이 말하길 ‘눈얼음을 깨고 피어나 결코 그 향기를 팔지 않은 채 하나의 사랑에 행복을 먹음은 덕(德)을 기리고 있어서 이름이 복수초(福壽草)라 했다. 이런 복수초 꽃에게는 그까짓 꽃샘추위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꽃샘추위도 다 까닭이 있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너무 쉽게 편안히 핀 꽃이 오래 갈 리가 없고 향기가 짙을 리 없으며 열매가 탐스럽지 못할거라 짐작이 간다. 교육에 몸담았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학생들을 너무 성급히 몰아 부친 것 같아 후회가 밀려온다.

아이들은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능력도 다르고 태어난 환경도 다르건만 일시에 같은 학습목표 만을 향해 가르친 건 아닌지 반성이 된다. 채송화나 봉숭아꽃은 여름에 피고, 코스모스나 국화꽃은 가을에 피며 심지어 무화과는 꽃도 피지 않으나 달콤한 열매를 맺지 않는가. 법정스님의 말씀 중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한 송이의 꽃이 피기 위해서는 그 꽃이 피기 위한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꽃들 중 가장 화려한 색깔과 가장 강한 향기를 지닌 꽃은 사막에서 피는 꽃이라고 한다. 저 멀리 있는 벌과 나비 그리고 새들을 불러 모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꽃만 그러 할 것인가? 사람을 꽃피우는 것도 꼭 그 이치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부모나 교육자가 교육을 잘못시키면 고귀한 아이들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이다.

양귀비꽃 같은 경우 예쁘기 그지없으나 독이 있어 마약에 이용되어 고귀한 삶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근대’라는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흙에 꽃씨가 미쳤고, 햇볕에 꽃씨가 발악했다. 바람에 꽃잎이 미쳤고, 빗방울에 꽃향기가 폭발했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학부모와 교육자 역시 교육에 미쳐야 내일의 꿈나무인 아이들을 저마다의 향기와 달콤한 꿀로 가득찬 꽃으로 활짝 피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이 사람꽃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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