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도라지값이 금값인가보다. 얼마나 비싸면 타지역에서 도라지 농사를 짓는다고 왔을까. 그 땅은 작년 동네 분 땅이었다가 경매로 넘어갔다. 그 땅은 산밑이었고 삼을 했었다. 시골 땅에는 모두 역사가 있다. 누가 얼마를 주고 샀고 누가 누구와 바꾼 땅이며 누구에게 물려주었는지, 어떤 작물을 심었었는지 지나가다 누구 땅 이야기가 나오면 한 줄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동네 모든 땅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다. 그 땅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땅이 타지역 사람에게 넘어갔을 때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다들 궁금해했다. 처음에는 전원주택을 짓는 줄 알았다. 농사를 짓는데 가림막을 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트럭이 연이어 들어오자 이상하게 생각한 마을 주민이 물었다. 땅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도라지 농사를 지을 건데 사포닌 성분이 많아서 석회를 뿌리고 퇴비를 주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트럭을 보니 음식물 쓰레기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부숙된 퇴비가 아니었다. 땅 주인이 말한 퇴비는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비료였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까. 문제는 퇴비 상태와 매립량이었다. 부숙되지 않는 퇴비는 땅을 오염시키고 지하로 침수되면 지하수까지 오염된다. 또한 농지법상 농지를 50cm 이상 파야 할 경우, 관할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땅 주인은 퇴비를 준다며 굴착기로 땅을 팠다. 흩어서 뿌리는 게 아니라 매립이었다. 도라지 농사는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퇴비를 매립해서 농사를 짓는 예는 없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네 주민들은 화가 났다. 그래서 반대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반대하면 법에 어긋난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 비료를 반출한 업체는 아직 법을 어긴 게 없고 오히려 업체가 마을 사람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현행법으로는 그 비료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상하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충북 전체가 그 음식물 쓰레기 비료로 골머리 썩고 있는데 문제가 없다니.

비료관리법의 허점이다. 비료관리법에는 평당 비료를 얼마까지 줘도 되는지 법으로 정해진 게 없다. 반출에도 문제가 있다. 음식물 쓰레기 비료 업체는 청주시지만 음성군에 신고하지 않고 매립해도 된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비료로 가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법에 없는 것들을 법으로 알고 살았다. 어른을 보면 인사한다. 일손이 부족하면 도와주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울어준다. 그게 우리 법이다. 하지만 법을 아는 사람들은 법을 이용한다. 법을 지켜야 할 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선까지 해도 된다고 여긴다. 이번 일로 오랜만에 활자에 찍힌 법이 살에 와닿았다.

며칠 전, 업체에서 보낸 트럭이 다시 다녀갔다. 위에는 음식물 쓰레기 비료가 아닌 척 흙을 덮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 이후 동네에서는 조를 짜서 감시하고 있다. 한창 바쁜 농사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장 농사보다 마을 환경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밭에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 적어도 시골 농사꾼은 그렇게 생각한다. 언젠가 가림막을 걷어내고 그 밭에 도라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땅이 음식물 쓰레기 매립으로 단절된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조금 곡절이 있었던 일로 우리에게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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