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과장

 
 

어릴 때에는 명절이 참 기대되었다. 명절 때는 아버님이 새 옷을 사오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군대에서 제대날짜를 기다리듯 명절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청소년기에는 친구들과 공부부담 없이 놀아서 좋았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커 가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명절은 어른들 용돈을 드리고, 아이들 용돈을 주는 것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아이들의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들이 보고 싶은 것 이외에 별 기대되는 것은 없다. 옛날처럼 북적거리는 것은 없으나, 오붓한 다정다감한 명절, 그러나 지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싱겁다.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과일나무도 심어보고 기와집도 지어보지만, 꺾어진 세월이 커가는 것이 아니고 쪼그라드는 세월만 남았다는 이유도 이내 접어야함을 알고 있다. 새로운 것을 포기한다고 해도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나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별로 없다. 그냥 하던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이다. 때로는 산책을 하고 들길을 걸으면 자연스럽게 지나간 시간이 스치고, 그때로 젖어들곤 한다. 가을단풍에 시상을 떠올려도 펜으로 적을 것은 별로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망각이 심해진다. 두가지이상의 일을 한 번에 하는 것이 벅차다. 하나의 일을 하면 하나의 일은 잊어버린다. 일을 끝나고 쉬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서 다시 일어서곤 한다.

어느 때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려 책망을 듣기도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거래를 하면서도 상대방이 나를 속이거나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가하는 두려움이 있다. 따라서 사소한 일에도 시비가 잦고 흥분을 자주하게 된다. 일을 하면서도 자신감이 없다. 내가 하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되고 주변사람들의 책망이 두려워진다.

자식이나 주변사람들의 무관심이나 작은 오해에도 섭섭해 하고 원망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대범하게 넘기던 일도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고 관심과 동정을 끌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자식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차는 잘 끌고 다니는지? 온종일 혼자서 걱정을 많이 하고 밤을 지새운다. 새벽에 일어나면 텔레비전에 빠지고 뉴스는 빠짐없이 듣고 시대의 흐름을 평가한다. 특히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하여 나름대로 소신 있는 평가를 내린다. 새로운 친구와 어울리기 보다는 늘 어울리는 사람들이 좋다. 하루 종일 분주하고 종종 걸음을 쳐도 해놓은 일은 없다.

봄인가 하면 여름이고, 가을인가 하면 겨울이다. 시간은 고속도로를 달린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을수록 내려놓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자식 걱정은 자식들에게 맞기고 알아도 모르는 척, 보아도 못 본 척, 가르치려하지 말고 미워하고 원망하지 말라. 금 같은 시간 뒷방어른으로 물러 있지 말고 매사에 적극 참여하고 소외 받을수록 어울리려 노력해라.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다 가르쳐주고, 기대하는 것, 요구하고 싶은 것은 모두 잊어라. 말은 열 번 듣고 한번 하되, 주머니는 항상 열어 놓아야한다. 늘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것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이해하고 양보하며 살다보면, 세상의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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